「금요거제시조選-175」
       비파주

      허원영

  비파로 술을 빚어
  행여 뉘가 넘볼세라

  몇 해를 고이고이
  묵혀낸 황금빛깔

  곱기도
  그지 없구나
  님 불러 즐기리라.

  칠성은 흩어지고
  샛별이 나오도록
 
  비파향에 취하고선
  밤새운 정담인데

  새벽달
  사라질 때쯤
  님의 품에 잠드리라.

 ◎ 독학(獨學)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충남 예산의 수덕산의 기슭 시량리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윤 의사는 식민지 교육이 비위에 거슬려 글을 배워 어디에 쓰느냐 하면서 보통학교 2학년 때에 스스로 교문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그런 윤 의사련만 독학을 결심하게 된 데에는 웃어 넘기에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하루는 산길을 거닐고 있었는데 남루한 차림의 청년 한 사람이 공동묘지의 묘표(墓標)를 잔뜩 안고 와선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는 「실례지만 글을 아시오」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예, 좀 압니다만 웬 일이지요」하자 청년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묘표를 하나하나 펼쳐 놓고는 이 중에서 우리 아버지를 좀 찾아 주시오」하며 애원을 했다. 깜짝 놀란 윤 의사는 「이 무슨 망칙한 짓이오」하고 크게 나무랐지만 청년은 들은 체도 않고 찾아 주기만을 애원했다. 사연인즉 가난한 집에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등에 업혀 외가 살이를 했으나 그 후 어머니도 행방을 감춰버려 떠돌이로 성장을 했는데 수소문 끝에 아버지 묘가 이곳에 있다하여 성묘를 왔으나 글을 모르니 찾을 수가 없어 이렇게 뽑아 왔다는 것이다.

 故人의 이름을 물어 그 청년의 아버지 묘표를 찾아 주고 기뻐하는 청년에게 묘표를 뽑을 때 표시를 해 두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 청년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덥썩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그 많은 묘표를 뽑아 오면서 표시를 해 두지 않아 이제는 아버지 묘를 영영 찾을 길이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이 일이 있은 후 無識을 통탄하고 이런  비극의 반복을 없애야겠다고 마음먹고 그 자신도 독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농민을 일깨우고 月進會를 조직하여 힘을 기르다가 끝내는 중국 청도로 망명하여 세탁소, 외교원, 직물공장 직공 등의 생활을 하면서도 나라 찾는 일에 앞장서고 망명 당시 신의주까지의 차비가 없어서 썼던 월진회 공금을 벌어 우송할 정도로 세심하고 청렴한 분이었다고 한다. 스스로 장작을 패면 두 배의 열을 얻는다고 했다.독학으로 立志를 다져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이 많다. 梅軒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의사도 그 중 한 사람이다. <白凡日誌>에 이런 句節이 있다.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 선생님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니 제 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하기에 나도 기념으로 윤 군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를 윤 군에게 건네주었다. 식장을 향하여 떠나는 길에 윤 군은 자동차에 앉아서 그가 가졌던 돈을 꺼내 내게 준다. 돈은 좀 가지면 어떻소. 하고 묻는 내 말에 윤 군이 「자동차값 주고도 5, 6원은 남아요」 할 즈음에 자동차가 움직였다. 나는 목이 멘 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하였더니 윤 군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향해 숙였다. 그리고 차는 떠나갔다.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 29일 白凡 金九 선생으로부터 도시락과 수통 모양의 폭탄을 받아 들고 일본 천황의 생일인 天長節과 상해사변 전승기념식장인 紅口공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석별하는 장면이다. 6원짜리 시계 하나지만 굳이 바꿔드리고 떠나겠노라는 의사의 인품과 그때의 심정을 다소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의거 후 일본 오오사까로 압송되어 형 집행으로 순국할 때 의사의 나이는 아깝게도 24세 때였다.

    마른 풀도 키를 낮춘 우금치란 언덕빼기
    뼈와 살 함성마저 바람으로 누워있다
    일백 년 잡초의 사발통문 깨지 않는 깊은 잠.

    역사란 승자의 몫 죽은 자는 죄도 죽고
    후대의 가슴에 남아 울음 우는 그날의 말
    절통한 이 땅의 쑥물 대접으로 들이킨다.
          이상범, ‘역사 견문록 1’, 1~2/4수

 우금치 동학농민군 3만이 공주성을 향해 네 갈래로 관군•왜군과 맞서 싸웠다. 끝내는 주력군 1만이 우금치에서 최후를 맞았다.국력의 소중함,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현대시조발발행인 능곡이성보

시조 작품 〈비파주〉는 행여 남이 넘볼세라 몇 해를 묵혀낸 황금 빛깔의 비파주를 앞에 두고 흥에 겨운 심경을 2수 연작으로 읊은 허원영 시인의 작품이다. 비파(枇杷)는 중국 후베이성 및 쓰촨성 남부가 원산지로 우리나라 남부, 일본, 동남아, 중남미 등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는 아열대식물이다. 비파 열매는 폐기(肺氣)를 치료하며 오장을 윤택하게 하고 기를 내리며 구역과 소갈증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고, 비파잎은 폐를 맑게 하고 위를 조화시키며 담을 삭히는 효능이 있다고 한방에서 설명하고 있다. 비파 잎을 두고는 남길 얘기가 있다. 
 몇 해 전 일이다. 오랜만에 장승포의 한 해 선배인 L형이 저녁을 같이하자는 전화를했다.  낙지볶음과 함께 소주를 3병이나 주문을 했다. 내가 아는 L형의 주량은 소주 1잔도 과한데 3병이라니, 놀라 형을 쳐다보았더니 이런 말을 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술을 입에 대지도 못했는데 비파잎 때문에 소주 3병 정도는 너끈하다고 웃어 보였다. 그리곤 비파잎을 물에 불리어 뒷면에 잔뜩 붙어 있는 자잔 한 털을 수세미 등으로 문질러 깨끗이 털어 내고는 말렸다가 2cm 정도 잘라 약한 불에 조금 덕은 후 차로 마신다고 했다. 누가 일러 준 비방인데 이 비파 잎으로 해서 건강도 되찾았고 1잔도 버거웠던 소주를 3병이나 마셔도 끄떡없다고 했다. 내가 거든다고 3잔 정도 마셨는데 나머지를 형이 다 마셨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비파 잎으로 차를 마시리라 하였는데 그만 잊고 있다가 〈비파주〉를 감상하다 이렇게 적어 본다.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목도 하였으니 술이 약한 분에겐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담금주에 일가견이 있는 시인이 이번에는 비파주를 들고 나왔겠다. / 비파로 술을 빚어 행여 뉘가 넘볼세라 / 깊숙이 어디에 숨겨 / 몇 해를 고이고이 / 묵혀 내니 그 우려난 술 빛 좀 보소, 황금 빛깔 아닐손가. 곱기도 고울진져, 마음은 벌써 님 불러 즐기리라 하고 두둥실이다. 이윽고 / 칠성은 흩어지고 샛별이 나오도록 / 흠뻑 / 비파향에 취하고선 밤새운 정담인데 / 어찌 흥겹지 않으리오 / 새벽달 때 쯤 님의 품에 잠드리라 / 점차 돌싱이 많아지는데 부부화합을 위해 <비파주>를 권한다. 그것도 황금 빛깔의 비파주 말이다. 장마로 우울한 심사를 <비파주>로 달랬으면 좋으련만.-능곡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