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97」

      겨울에는 

      허 원 영

   겨울에는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바람이 두드리고
   지나가는 소리에도

   혹여나
   그대 왔는지
   문을 열고 봅니다.

 
   뜨거운 난로 앞에
   언 몸을 녹여 봐도

   한마디 말도 못 할
   차가운 마음인데

   그리움
   새 봄날까지
   품을 수 있을까요.

   황량한 겨울 속에
   그 무슨 희망으로

   꽃 피우며 그대를
   기다릴 수 있을까요

   언몸을
   녹여내는 밤
   새봄에 떠나세요.

◎그림으로 고친 병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다.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특히 과중한 업무나 학업, 취업 문제, 경제적 상황, 건강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계속되면 신체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나타나는데 신경과 장부(臟腑)의 활동과 밀접하게 관계되고 있다. 한 의학자는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의 상처가 패배한 병사의 상처보다 빨리 치료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정서적인 여건이 어떠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많은 의사들은 음악 등을 약물을 보조하는 것으로 이용해 큰 효과를 거두었으며, 약물이 효과가 없는 환자에게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병을 완치시키기도 했다.

 수양제(隋煬帝, 569 – 618)인 양광(楊廣)은 중국 수나라의 2대 황제로 후대에 폭군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수양제는 폭군에다 주색에 빠져 늙기도 전에 몸이 쇠해졌다. 그가 온갖 병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황궁의 어의들은 모두 그의 병을 고치지 못해 방을 붙여 명의를 구했다. 당시 막군석(莫君錫)이란 화가가 있었는데, 그는 의술에도 상당히 밝았다. 방을 본 그는 모집에 응해 황궁으로 들어가 황제를 진맥했다. 그러고 나서 약 처방은 하지 않고 거대한 그림을 두 장 그려 황제의 침궁에 걸어 놓았다. 양제가 보니 한 폭은 「설경도(雪景圖)」로, 온통 거위 털 같은 함박눈이 휘날리는 풍경이었다. 사방천지에 눈이 덮였는데 그것은 함박눈의 눈발이 거의 설경을 방불케 했다. 순간, 마치 달 속의 광한궁(廣寒宮)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심장과 비장이 떨려오면서 적체된 열기가 식고 말았다. 식은 열기는 오한이 들 정도였다. 놀란 그는 또 한 폭의 그림에 눈이 갔다. 또 한 폭은 「매림도(梅林圖)」였다. 오직 정원 가득 탐스러운 매실이 열려있는 그림이었다. 그림 속의 매실을 보자 양광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흉중에 쌓인 가래를 모두 토해냈을 뿐만 아니라 혀와 입이 말랐던 증세가 크게 개선되었다. 비록 양제가 폭군이었지만 시를 잘 짓고 서예를 좋아하는 예술 애호가였다. 그는 민간 출신 화가인 막군석의 그림 두 폭이 무척 마음에 들어 매일같이 보고 또 보았다. 그러자 보름이 채 지나지 않아 병이 완쾌되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본다. 심약했던 나는 난에 심취하여 많은 위안을 받았다. 병석에서나 부채에 시달릴 때 난을 들여다보아 지친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유년의 솜사탕 같은
    유혹에 이끌리어

    한달음에 내달은 땅
    그 땅은 늪이었어

    시원을 알 수 없는 늪
    종교보다 깊었다.

    헤어나지 못하는 미망(迷妄)
    차라리 은혜였다

    천 년을 내리내리
    끝이 없는 신의 편애

    선 채로 열반에 들어
    하늘 소리 듣는다.
    -拙詩, ‘난의 늪’, 전문

 수양제에 대하여 더 살펴본다. 수양제는 전쟁과 대운하에 미친 중국 최악의 폭군이었다.
 말 그대로 그는 전쟁(수 ⸱ 고구려 전쟁)과 대운하(그리고 만리장성)에 미쳐 천하와 백성들을 돌보지 않다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을 뿐만 아니라 수나라의 명을 극도로 짧게 만든 인물이다. 수양제 폭정의 대망을 장식하는건 수 ⸱ 고구려 전쟁이었다. 첫 번째 침공은 그 유명한 을지문덕에게 패배를 당했다. 우리에겐 살수대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수나라 군사 30만 명이 3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이처럼 최악의 패배에도 이듬해 침공해 지난번 치욕을 갚고자 했으나 내부반란 때문에 철수해야 했다. 수양제는 두 번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3차 침공을 감행 했으나 지친 고구려도 지극히 형식적인 항복을 청했다. 그러나 수양제는 결국 아랫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얼마 후 수나라는 멸망하였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 시인/계간 현대시조 발행인

시조 작품 <겨울에는>은 황량한 겨울날에 기다리는 님이 행여나 오시려나 지나는 바람 소리에도 마음을 조바시며, 오신님이 새봄에 떠나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사를 3수 연작으로 읊은 허원영 시인의 작품이다. 어느 사이에 ‘금요거제시조選’도 200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좋은 시조를 짓고자 하는 거제시조문학회원들의 창작 의욕도 그 열기를 더해 가는 것 같아 미더운 마음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시조를 쓸 수 있을지 지금까지 산발적으로 설명해 온 중요 사항을 참고삼아 정리하여 본다.
 첫째, 신선한 소재의 선택이다. 지금까지 지겹도록 써 온 진부한 소재로는 독자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눈을 밝게 뜨고 보면 생활 주변에 신선한 소재들이 널려 있다. 
둘째, 개성이 있어야 한다. 누구나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니라 나만의 목소리로 노래해야 한다. 주제는 물론 표현 기법도 운율적 가락에서 특징을 가져야 한다.
셋째, 말은 쉽고 생각은 깊어야 한다. 어려운 말을 쓰면 전달력이 약해진다. 누가 읽어도 역시 좋다고 할만한 표현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사상은 읽을수록 감칠맛이 나도록 융숭 깊어야 한다. 
 넷째, 간절해야 한다. 대하소설로도 다 하지 못할 내용을 시인은 3장 속에 압축해야 한다.
 다섯째, 감동을 주어야 한다. 서정의 바탕 위에서 지성이 번득일 때 차원 높은 감동은 유발되는 것이다.

/겨울에는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첫수의 초장을 접하자 가수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가 떠올랐다.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지면 서러움이 더해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절절한 사모곡이 가슴을 저리게 하더니만 시인은 / 겨울에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하고는 바람 소리에도 혹여나 그대 왔는지 문을 열고 본단다. 절절한 연시로 첫수를 열어 차가운 날씨에 군불을 지핀다. / 뜨거운 난로 앞에 언 몸을 녹여봐도 / 마음은 한마디 말도 못 할 정도로 차갑기만 한데 이 / 그리움을 새봄 날까지 품을 수 있을까요 / 하고 안타까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핀 군불은 잉걸불이 되어 가건만 마음은 식어만 가고 있어 점입가경이다. 혹한에 시달려 본 사람은 알리라. 황량한 겨울 맛이 어떠한지를 / 황량한 겨울 속에 그 무슨 희망으로/ 꽃을 피우며 그대를 기다릴 수 있단 말입니까. / 언 몸을 녹여내는 밤 / 이어니 그대여 제발 / 새봄에 떠나세요 /

 서정시는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미움, 사랑, 의지 등 이른바 칠정(七情)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게 되므로 주제가 제한될 수밖에 없어 마침내는 기교로 흐르게 된다. 이 점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겨울에는>은 신선한 서정 속에서도 지적인 반짝임을 보여주어 인상적인 작품이 되었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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