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산책

이 늙음 또한 좋지 아니한가

가산 김종원

붉은 황혼만큼이나
아직 기다리는 안 넘긴 하루의 책장이
희열을 몰고 올지 몰라

짱짱하던 시절이야 누군들 없었겠는가?
이마에 훈장같이 새겨진 세월의 문신을
이제야 쓰다듬는다

운명 앞에 맞선 것도 아니지만
뻔히 찍힐 줄 알면서 도끼날 아래 발등을 내밀고
썩은 짚으로 새끼를 꼬기도 하면서
날 선 연장에 베이기도 했나니
목숨을 담보한 것들이 운명처럼 달라붙어
참으로 겁난 날이 많았다

그래도 휘청거리며
이렇게 황혼에 다다랐음을 내 찬미하노라

이제
눈이 도서관 문장들을 쪼아 먹으러 간다
어둠의 자식들 출몰하는 바퀴벌레도 잡고
기억만큼이나 무디어진 식도를 숫돌에 문지른다
아내의 흠간 탁구채나 본드로 때우고
주방 설거지하는 이 행복이여

늙음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눌산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감상)
인생을 달관한 시인의 노래입니다. ‘이마에 훈장같이 새겨진 세월의 문신을’ 가진 자만이 쓸 수 있는 시입니다. 가수 서유석의 노래처럼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출발이다」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 있는 자의 노래입니다.
때로는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주눅이 들거나 이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밀려들 때 그게 정말 슬픈 일입니다. 가산 김종원 선생은 남은 여생을 ‘아직 기다리는 안 넘긴 하루의 책장’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절묘한 표현 속에는 설렘과 기대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우리의 지나온 삶의 궤적을 어떠했습니까?
돌아보면 ‘뻔히 찍힐 줄 알면서 도끼날 아래 발등을 내밀고’ ‘썩은 짚으로 새끼를 꼬기도 했고’ ‘날 선 연장에 베이기도 한’ ‘참으로 겁난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삶이 힘들고 괴로웠다는 것을 이 기막힌 은유와 상징으로 가산 시인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감정환기적 표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지난 날의 삶이 비록 힘들었다 하더라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황혼에 다다랐음을 내 찬미하노라’며 독자로 하여금 절망에서 희망으로 반전시킵니다. 그러나 ‘늙음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라는 시적화자의 독백 속에 왠지 서글픔 또한 얼비치는 아이러니가 시의 텐션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눌산 윤일광문예창작교실 제공)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