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고운 최치원 문학상, 거제출신 가산 김종원 시인 수상

지난 2023년을 평가하는 계 간 ❮문장 21❯이 시상하는 '제15회 고운 최치원문학상' 수상자로 거제출신 시인 가산 김종원씨가 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통권 63호 23년 겨울호에서 밝혔다. 수상작품은 '이 늙음 또한 좋지 아니한가' 외 4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으로는 김종(화가, 시인 언론중재 위원),선용(아동문학가, 번역가),윤일광(시인, 문장 21 편집고문, 거제문화원장), 최철훈(시인, 문장21 발행인) 4인이 맡았다.

<심사총평>
고운 최치원 문학상 수상의 영광인 대상 수상자는 수상 기준에 맞는 분이 없어 시상하지 않기로 했으며, 본상 수상자로 노명서(시인), 김종원(시인)에게 돌아갔다. 위 두 분을 심사위원 전원일치 수상자로 결정하였다.

<아래는 수상소감 및 수상작품이다>

< 수상소감>
다른 이들이 놓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혜안을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참으로 아득하고 멀었습니다. 하지만 놓칠 듯 말 듯 시의 고삐를 붙들고 적지 않은 세월 여기까지 버티어 왔습니다. 나는 시를 쓰면서 맨 먼저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그 첫째는 내 시가 과연 시의 반열에 놓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고, 두 번째는 독자가 공감하고 감동하기에 앞서 내가 먼저 시에 취해버리지는 않았는지를 경계해왔습니다.
이 나이 되도록 시를 붙잡고 있다는 것이 쉽지 않은 고행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에게 있어서는 구원이었습니다. 밝힐 수 없는 지독한 트라우마를 시를 통해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이렇게 큰 상을 안겨주신 《문장 21》 발행인과 심사위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설익은 시를 이런 반열에 올려주신 눌산 윤일광선생님 고맙습니다. 기쁨이 가득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늙음 또한 좋지 아니한가 외 4편

가산 김종원

봄의 황혼만큼이나 아직 기다리는
안 넘긴 하루의 책장이 희열을 몰고 올지 몰라

짱짱하던 시절이야 누군들 없었겠는가
이마에 훈장같이 새겨진 세월의 문신을
이제사 쓰다듬는다

운명 앞에 맞선 것도 아나지만
뻔히 찍힐 줄 알면서 도끼날 아래 발등을 내밀고
썩은 짚으로 새끼를 꼬기도 하면서
날 선 연장에 베이기도 했나니
목숨을 담보한 것들이 운명처럼 달라붙어
참으로 겁난 날이 많았다

그래도 휘청거리며
이렇게 황혼에 다다랐음을 내 찬미하노라

이제
눈이 도서관 문장들을
쪼아 먹으러 간다
어둠의 자식들 출몰하는 바퀴벌레도
잡고 기억만큼이나 무디어진 식도를 숫돌에 문지른다
아내의 흠간 탁구채나
본드로 때우고 주방 설거지하는 이 행복이여
늙음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인생의 꽃길이 그냥 열리더냐

언니다방 이천 원의 행복

가산 김종원

돌아보면 떠나보낸 시간들이야 도리없이 어쩌리 내 커피향 즐기며 고즈넉이 앉아 사색에 젖기까지 수많은 악몽의 세월을 지불하고 황혼에 다다랐다

넉넉지 못한 남아있는 시간과 쓸 수 있는 금전의 잔액을 헤아려 본다 이제 어디든 맘 가는 대로 행복 찾아 가불해 쓴들 어써랴

누구에게 복종할 일 사라지고 빵과 소망을 위해 비굴할 일 없으매 발길 닿는 곳마다 풍경들이 하회탈 미소같이 정겹다

동네 한 바퀴 마실 돌아 열 시와 열 한시 사이 벗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아련한 먼 그리움도 불러 언니다방 아메리카노 잔에 슈가처럼 녹아드는 이천 원의 행복
주인의 반달 같은 눈웃음 서비스로 따라오고 웅얼웅얼 시 한 편 외워보는 희열

벗이여
지는 해를 서글퍼 말자
사색이 물안개로 피어나는 언니다방
아메리카노 이천 원의 행복

시인의 꿈

가산 김종원

원고지 선을 따라 별을
가득 싣고 달려오는 푸른 기차를 보고 싶다

배 나온 시인도 보고 싶다
깨끗한 정신이 물질과 수평이 되는 저울을 보고 싶다
흔한 달력처럼 거실 벽에 나부끼는 시를 보고 싶다
시 한 수가 소주 한 병을 대신하는 시대를 보고 싶다
시 한 수가 자장면 한 그릇을 대신하는 시대를 보고 싶다
시 한 수가 완행열차 여비를 대신하는 시대를 보고 싶다
이 땅에 시 농사에 귀농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싶다
지은 시 수확을 반이라도 수매하는 정부를 보고 싶다
외상술 먹는 시인이 완전히 사라지는 시대를 보고 싶다

천지를 진동하고 남을
시인의 아내 한숨 소리 멎는 세상 좀 보고 싶다

소백산 주목

가산 김종원

산속에 산이 되어버린
나무가 있다
죽어서도 살아있고
살아서도 죽어있는
나무가 있다

소백산 등줄기마다
맨살의 눈부신 글자 없는
묘비명 서 있다
학의 공동묘지에 세워야 할 백비 있다

오늘도 산꾼들 쉼 없이
오르내린다
아무도 글자 없는 백비 해독한 이 없었다

산까마귀 울음 차가운
소백산 가면 눈 맞고
서 있는 미라가 된
나무가 있다

가을편지

가산 김종원

꿈을 꾸고
꿈을 접는 것도
오직 너의 몫

이 가을 뭐라도 저질러
봐야겠다고 했잖아
네 여린 마음 또 꺾일까 봐 걱정이구나

부딪쳐 보는 거야
나아가
가을 햇살이 등 떠미는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