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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아침산책(314)윤석희] `등목'한솜 윤석희)《수필과 비평》에서 隨筆, 《문장21》에서 詩로 등단 ·수필집 《바람이어라》《찌륵소》 펴냄 ·계룡수필문학회원 ·눌산문예창작교실 수료

 월요 아침 산책 (314)
        등목



 

 

 



    한솜 윤석희

마중물 어깨동무하고 마실나온
속 깊은 펌프물 만나고 싶다

사막과 늪지대를 맨발로 달려와
동굴 벽에 삐걱삐걱 관절 부딪히며
마침내 탄성으로 솟구친 투명한 자유 날개치면
쏟아지는 죽비 소리에 깃발 돋는 각성

멈칫 움츠리다
어머니 따사로운 손길에 굽은 등 벼리고
헛기침 날리며 가슴 펴던 아버지
땡볕 고춧잎 같던 생애 털어내며
물 먹은 낙타처럼
묵묵히 일어섰지

무겁게 눌러 닫은 지친 침묵에도
툭툭 갈라 터진 메마른 일상에도
어둠 뚫고 나선 시린 햇살
한 동이 뒤집어쓰면
햇쑥향처럼
싱그러울 수 있을까

상고머리 여자아이
그믐달 지치도록 마당 가 서성인다.

감상)

눌산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P.휠라이트는 ‘시의 표현이란 그 표현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의미의 전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모든 비유를 통틀어 은유로 본다는 것이 그의 견해라 할 수 있다. 그는 은유를 치환은유(epiphor)와 병치은유(diaphor)로 구분하고 있다. 그럼 치환은유와 병치은유로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은유에서 발생 되는 의미전환의 질’이라고 말한다.치환은유란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것'으로 '저것'을 말하는 전통적 은유형식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 / 그대 배 저어오오(김동명 시 : ‘내 마음은 호수요’ 첫부분)>라고 했을 때 ‘마음=호수’라는 등가(等價)가 성립한다. 곧, ‘마음’이라는 원관념이 ‘호수’하는 보조관념에 의해 치환(置換)된 것이다. 대개의 은유는 이런 고전적 방식을 취한다. 이때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는 유사성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에 비해 병치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을 찾기 어렵다.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를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ㅡ김춘수 「나의 하느님」 부분

이 시에 나오는 '나의 하느님'이 '늙은 비애', '푸줏간의 살점', '놋쇠 항아리'로 결합시킨 은유를 이루고 있다. 문학이론에서는 이를 확장은유라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하느님=늙은 비애’ ‘하느님=푸줏간의 살점’ ‘하느님=놋쇠 항아리’라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는 아무런 유사성을 찾을 수 없다. 독립된 상태로 그냥 나란히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시를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현대시의 난해함도 여기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치은유는 제목과 각행이 따로 놀고 있지만 이들 이질적 사물을 결합시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게 된다. 

한솜 윤석희 시인의 시 <등목>은 깊은 은유로 짜여진 한 편의 시다. 요즘 시인들의 시에서 보기 드물게 은유가 낯설고 참신하다. ‘등목’은 팔다리를 뻗고 바닥에 엎드린 사람의 등에 물을 끼얹어, 몸을 씻고 더위를 식혀 주는 일로, 유의어로 ‘등물’ ‘목물’이라고도 한다. 이 시의 구조는 간단하다. ‘펌프로 퍼 올리는 물로 엎드린 아버지의 등을 어머니가 등목해 주는 모습’이다. 여름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 펌프물을 ‘사막과 늪지대를 맨발로 달려와 솟구친 투명한 자유 날개’이며 ‘쏟아지는 죽비 소리에 깃발 돋는 각성’이라는 표현으로 병치시켜 놓았다. 등목하고 일어서는 아버지의 모습은 ‘땡볕 고춧잎 같던 생애’ ‘물 먹은 낙타’로 독자로 하여금 나름대로 새로운 의미를 조합하게 만든다. 특히 이 시의 마지막 연의 ‘상고머리 여자아이 /그믐달 지치도록 마당 가 서성인다.’는 연의 병치는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마침표다. 생뚱맞게 등장하는 이 ‘상고머리 여자아이’는 바로 이 시의 화자다. 처음부터 이 시를 이끌어 온 주인공이다. 등목해 주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과거라면 마지막 연은 현재다. 시점의 변환이다. ‘그리움’이라는 보이지 않는 주제를 ‘등목’이라는 소재로 이끌고 간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맛 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처럼 좋은 시 한 편을 감상하게 되어 시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눌산 윤일광 문예창작교실 제공)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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