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87」
명량 파왜병장(鳴梁 破倭兵狀)
    -명량대첩-

    
    김  현  길

도리없다
一字陳이다
적선 133척
13척으로 이겨 놓고
천행이다 말했네
아! 님아
그게 어찌하여
천행이란 말입니까.

울돌목
거친 물살
하늘이 내게 준 자리
불을 뿜는 포연 속에
애끊는 강강술래
형님의
원수 갚겠다던 
미치후사는 죽었다.

◎밭 한 뙈기
 여름 내내 극성스럽던 모기련만 갈바람에 비실대는 모양새가 측은하기조차 하다. 아무렴 모기를 두고 측은하다는 말이 가당키나 할까만 기세 좋게 앵앵거릴 때와는 비교되기에 해본 말이다. 성(盛)하면 쇠(衰)하는 세상 이치를 모기도 보여주고 있다. 명진 터널을 지나면 지금은 온통 황금 들녘이 된 거제면의 벌판이 나타난다. 산촌 매립지로 이어지는 벌판은 거제에서는 제일 넓은 벌판이다. 내 명의로 된 집 한 채 밭 한 뙈기 없으니 넓은 벌판을 바라보는 심사가 편치 못하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한 이는 알렉산더대왕이었다. 알렉산더는 징기스칸, 나폴레옹, 히틀러보다 더 넓은 땅을 정복한 대왕이었다. 기원전 334년경 페르시아 제국과 이집트, 유럽,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에 걸쳐 수많은 국가를 정복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은 스무 살 나이에 왕이 되어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자 마지막으로 인도를 공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10년 이상 이어진 원정 생활에서 계속되는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나이 33세에 세상을 하직하였다. 그는 부하들에게 “나를 묻을 땐 내 손을 무덤 밖으로 빼놓고 묻어주게. 천하를 손에 쥔 나도 죽을 땐 빈손이란 걸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네”라는 유명한 유언을 남겼다. 이를 두고 한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어제는 온 세상도 그에게 부족했으나 오늘은 두 평의 땅으로도 충분하네. 어제까지는 그가 흙을 밟고 다녔으나 오늘부터는 흙이 그를 덮고 있네.”라고 老覺人生 萬事非 憂患如山 一笑空은 옛 성현이 남긴 말인데 ‘늙어서 생각하니 만사가 아무것도 아니며, 걱정이 태산 같으나 한 번 소리쳐 웃으면 그만인 것을….’ 여기서 인생사 空手來 空手去를 보태어 모든 일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본래 내 것이 없으니,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참 아무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모두
   ‘내’ 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 것은 없다 

   하나님도
   ‘내’ 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된다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권정생, ‘밭 한 뙈기’, 전문
권정생 선생은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 많은 책을 내셨고 소박하게 사시다 가신 분으로 안동 일직면에 생가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살아보면 삶이란 게 한갓 꿈에 불과하다고 느끼며 허무감을 함께 안고 산다. 양 주먹을 꽉 쥐고 태어났기에 ‘더 많이’와 한 번 쥔 것은 ‘끝까지 움켜쥐려’ 하는 인간의 본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진단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래선지 다들 축재에 혈안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편도행 완행열차라 했다. 어차피 빈손으로 가는데 재물을 모으지 못해 안달이다. 모은 재물을 구두쇠처럼 쓰지 않고 축적하면 인생을 값지게 사는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눈높이를 낮추고 적선을 베풀면 행운의 여신이 가는 길을 밝혀 주려만 몽땅 부둥켜안고 하나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재물과 욕심을 다 버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적어도 죽을 때까지 필요한 재산은 모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삶 자체가 비참해진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은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자각하기는 말만 쉽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축재는 할 줄 알아도 그 재물을 가치 있게 쓰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또한 축재를 하기 위해 한탕주의와 간계와 속임수로 일확천금을 노리다 보니 정치•경제•사회•문화•체육 등 온갖 분야에서 한 곳도 청정지역이 없게 되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건만 이곳을 찾는 이 중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나는 이런 신소리를 하기도 한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자산가인지 헤아려 보십시오. 위에 보이는 하늘이 이천만 평이요, 사방에 보이는 산이 오백만 평이며, 앞의 저수지가 십오만 평입니다. 전부 내 것인데 현금이 약간 모자라 세금 때문에 소유권 등기를 하지 못합니다”라고. 한참 뒤에사 웃는 그들을 따라 나도 웃는다. 문호 톨스토이는 말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살았느냐”이다. 알렉산더대왕의 유언처럼 어차피 갈 때는 빈손 일지니 축재에 너무 신경 쓸게 아니라 삶다운 삶을 사는데 인생을 투자하기를 권해본다.  지난 9월 30일, 이날은 추석 다음 날이었다. 이날 저녁 지세포항에서는 ‘제1회 지세포항 한가위 불꽃축제’가 열렸다. 일운면 번영회에서 주관한 불꽃축제는 대박이 났다. 이 축제는 출향인 한 사람의 기부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그분께 이런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燕雀安知 鴻鵠之志哉’(연작안지 홍곡지지재•제비나 참새 같은 작은 새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의 뜻을 알리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현대시조발발행인 능곡이성보

시조 작품 〈명량 파왜병장〉은 정유재란 당시의 명량대첩을 2수 연작으로 읊은 김현길 시인의 작품이다. 명량대첩(鳴梁大捷)은 1597년(선조30) 9월 16일, 일본수군이 133척의 배를 이끌고 조선에 침입할 때, 이순신장군이 명량의 거센 조류를 이용하여 일본수군을 대파한 해전이다. 당시 조선의 전력은 원균의 패전으로 13척의 병선밖에 남지 않았으나 이순신이 뛰어난 전술로 대항했고 일본군 장수 구루시마의 목을 베어 매달아 사기를 꺾으면서 일본 병선 31척을 격파했다. 이 전쟁은 모함을 받아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어 승리를 이끈 해전이며, 이 명량대첩은 정유재란의 흐름을 바꾸었다.

시인은 ‘시작 노트’에서
“온 나라가 어렵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내 개인은 더욱 어렵다. 이런 때 이순신이 남은 배 13척과 패잔병을 이끌고 울돌목 거친 물살을 버티며 133척의 왜적선과 맞서 끝내는 일본 병선 31척을 격파했다. 그 불굴의 도전 정신을 떠올리며 울면서 이 시를 쓴다.”고 했다. 이순신이 명량에서 133척의 일본병선과 맞섰을 때 진용은 一字陳이다. /도리없다 一字陳이다/. 적선 133척의 통과를 저지하려 할 때 13척으로 一字陳을 쳤다. 그리곤 적선 31척을 격파했다. 이를 두고/ 천행이다 말했다./ 누가 그러했겠는가.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아! 님아 그게 어찌하여 천행이란 말입니까/ 명나라 진린(陳璘) 도독은 이순신을 일러 경천위지(經天緯地·온 천하를 짜임새 있게 다스림)의 지략을 지닌 성인이라 하지 않았던가. 천행은 천부당만부당한 겸손과 겸양의 말씀일지니.

울돌목 거친 물살은 하늘이 당신께 준 자리였네. 포연, 불을 뿜는 포연속에 애끊는 강강술래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은 둥근 원을 만들고 논다는 뜻이요, ‘술래’는 도적을 잡는다는 뜻이란다. ‘강강술래’는 남쪽 해안 지역에 전해오는 민속놀이로 임진란때 처음 시작되었다는데, 바다를 지키던 이순신 장군이 왜적이 쳐들어 오는 것을 감시하려고, 곳곳에 불을 피워 놓고 춤을 추게 하면서 시작된 거라는데 우리 군사가 많아 보이게 하려고 여자들에게 남자 옷을 입혀 빙빙돌게 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명량 파왜병장〉의 둘째 수 중장에서의 ‘애끊는 강강술래’의 등장은 그 짜임새가 절묘하다 하겠다. 시인의 혜안이 놀랍기만 하다. 거기다 적장 미치후사의 죽음까지, 역사에 대한 해박함이 우러나기에 格을 더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딱딱한 시조를 보다 부드럽게 하기 위한 행바꿈의 시도다. 시인의 견해를 들어 보기로 한다. 나의 시조관은 ‘현대시조는 변해야 한다’이다. 시조를 대하면서 항상 느꼈던 생각이다. 정형시로서의 틀은 유지한 채로 말 그대로 현대시조 답게 탈바꿈을 해야 한다. 나이 든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매력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람이 노산이 그랬듯이... 우리말로서는 절대로 랩이 안된다고들 생각했을 적에 서태지라는 걸출한 인물이 음악계에 나타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놓았다. 왕산악이 거문고를 만든 후 문헌으로 전해오는 많은 분들이 명인으로 등장한다. 거문고 소리에 학이 춤을 추었다든지... 근래에 나는 거문고를 기타치듯이 켜는 분을 보았다. 그래서 시조도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나는 항상 실험정신으로 시조를 쓴다. 글자수는 늘어났다. 그러나 48자를 절대 넘지 않았다. 요근래 3장 6구 12음보에 한자도 틀리지 않고 쓰는 “청품명월의 시조”를 보면서 내 생각이 다 옳다는 것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내 시조 스타일을 보시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대를 느꼈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시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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