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202」
   방물 장수 이후

      김 현 길
  무덥던
  여름이었다
  아이스케키 사아려-
  백운당* 통을 매고
  바다 건너 깡촌까지
  녹기 전
  보리 한 대박과
  바꾸어서 먹었다.

  동동
  구리무장수
  도동동동 북을 친다
  맛배기 분냄새로
  아낙네들 불러 모아
  아짐 씨!
  예뻐지는 구리무
  발라보고 사이소.

  어느해
  겨울밤에
  찹쌀떠억~ 찹쌀떠억~
  얼마나 살기 힘들면
  통영서 여기까지들
  어머닌,
  아무도 안 사줄까봐
  지전들고 나선다.

   ★백운당: 아이스케키 통에 백운당이란 글씨가 쓰여 있었다.   

◎ 전심(專心)
장자(莊子)가 어디를 가노라니까 조그만 척추장애인 하나가 선조(蟬蜩) 즉, 매미를 잡고 있는데 백발백중으로 영락없이 잡더라는 것이다. 하도 신기해서 그 옆으로 가서 “승조유술호(承蜩有術乎)아” (매미를 잡는데 무슨 특별한 기술이 있느냐) 하고 물으니, “승조무술(承蜩無術)이라 유유전심(唯有專心)이니라” (매미를 잡는데 특별한 기술이 있겠습니까? 오직 전심으로 잡으면 꼭꼭 잡힙니다.) 하는 대답이었다. 장자는 이 장애인의 말에 매사는 전심(專心)으로 하면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한다. 전심(專心)을 사전엔 마음을 오로지 한 일에만 씀이라 했다. ‘전심전력을 다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이행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담살이를 하는 총각이 있었다. 담살이는 머슴살이와는 달리 주인집에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참여하여 도와주고 주인집에서는 생계에 지장이 없도록 품삯이나 토지를 제공하는 상하 관계였다. 담살이 총각은 혈혈단신이었다. 굶지 않는 것만 해도 큰 은혜로 생각해서 힘든 일도 즐겁게 했다. 새경은 몽땅 계명산 봉석사에 시주를 해서 늘 빈손이면서도 마음은 넉넉했다. 평판은 좋았고 앞날을 걱정해 주는 이웃도 많았다. 
 “시주도 좋지만 재산을 모아 색시라도 얻어야지”
 “지는 나중에 봉석사에 가서 살거구만요”하면서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씨익 웃었다. 봉석사에는 훌륭한 스님이 있었다. 총각은 불심도 두터웠지만 스님을 더 좋아했다. 먼빛으로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스님 밑에서 심부름이라도 하며 불경을 배우고 싶었다. 불경 공부를 해서 스님처럼 훌륭하게 되고 싶었다. 이러한 총각의 속내를 아는 지 하루는 주인이 말했다. 
 “절간에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던데, 거기 가겠니?”
 “예? 그거 헛말이 아니지유?”
 “그래, 너만 괜찮다면 내가 스님께 말씀드려 볼까 한다.”
 “주인어른, 그렇게 해주셔유. 가고 싶어유.” 
 그래서 절로 가게 되었다. 절에서는 아침에는 법당 앞과 요사채 둘레를 쓸었다. 낮에는 땔나무를 해서 밥을 짓고 빨래하고, 스님 방에 군불을 지피는 것이 일이었다. 그 밖에는 스님의 독경 소리를 듣거나 법당에서 스님처럼 부처님께 절을 했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스님의 처분만 기다렸다. 몇 해가 지나도 스님은 불경은커녕 글 한 자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말도 별로 없으셨다. 이따금 요사채의 이불을 말려라. 법당에 있는 방석을 털어라 하는 정도였다. 스님의 그런 말에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총각은 중도 속도 아닌 불목하니 일 뿐이었지만 스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겨울 새벽에 스님 방에 군불을 지피고, 얼음물에 승복을 빨면서도 스님을 위한 일이라면 추운 줄도 몰랐다. 스님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자랑스럽고 행복했다. 세월은 참 빨랐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나갔다. 스님도 연세가 많아 거동이 어렵게 되었다. 겨울이 되자 절간은 눈에 잠겨 땔나무가 떨어졌다. 총각은 스님 방에 땔 나무를 하러 산으로 향했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을 헤치며 산을 오르는데, 뒤에서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사님, 그만두고 내려오시지요.” 
 총각은 스님이 찾는 대사가 어디 있나 하고 둘레를 돌아보았다. 스님은 기력이 떨어져 간신히 허리를 펴며 총각을 향해 손짓을 했다.
 “대사님, 눈이 너무 깊습니다. 어서 산에서 내려오십시오.”
 “스님! 지금 누구에게 하신 말씀입니까?”
 “여기 대사님 말고 또 누가 있습니까? 이제부터는 소승이 땔나무를 하겠습니다.”
 스님은 총각을 향해 합장을 했다. 수십 년간 한결같이 전심으로 스님을 모신 총각은 자기도 모르게 각(覺: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스님을 향한 전심을 다한 존경심이 조개가 진주를 키우듯 스스로를 가꾸어 높은 불성과 훌륭한 인격을 갖춘 큰 스님이 된 것이었다. 그가 곧 담살이 대사였다.

   새경을 몽땅 떨어 시주한 담살이 총각

   자초한 불목하니 봉석사 스님으로부터 불경은
   커녕 글 한 자 배운 바 없었으나 수십 년을 하루 
   같이 자랑스럽고 기쁜 마음으로 스님의 시중을 들어
   그 지극한 존경심은 조개가 진주를 키우듯 스스로를
   가꾸어 마침내 득도하였으니

   오호라 담살이 대사, 사연 듣고 뛰는 가슴.
              -拙詩, ‘담살이 대사’, 전문

 거제장가계 제작에 사력을 다하는 필자에게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어느 집 응접실에 ‘실수할 수 없는 사람’이란 제목이 붙은 사진 한 장이 걸려 있었단다. 수십 길의 벼랑 양쪽에 걸친 줄을 타고 있는 한 남자를 찍은 사진인데, 0.1%의 방심이 허용되지 않기에 ‘실수할 수 없는 사람’이란 제목에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8m 높이의 사다리의 끝에서 하는 작업, 이 또한 실수할 수 없는 사람이란다. 그렇다 오직 전심(專心)만이 살아남을 수 있기에 작업을 하다 말고 담살이 대사를 기려보았다. 뛰는 가슴을 안고 갑진년의 하늘을 올려다본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 이성보시조시인 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방물 장수 이후>는 아이스케키며 동동구리무, 찹쌀떡 장수의 사연들을 3수 연작으로 읊으면서 “둔덕에서 객선이 통영 쪽으로 건너다닐 때의 옛날이야기”라며 말을 하다 말고 두 눈을 지긋이 감은 김현길 시인의 작품이다. 둔덕 촌놈 아니라 할까봐 그 옛날을 잘도 불러오고 있다.

 그 옛날 보리 한 대박은 용처가 많았다. 물 한 바가지와 함께 주린 배를 채우는 주된 소임은 말할 것도 없고, 종일 먹어도 성에 차지 않던 엿이며 아이스케키, 짜장면에 사사 이발에다 월사금까지. 그중 숨이 멎을 것 같이 맛있던 아이스케키, 그것도 백운당 아이스케키였으니 다한 말이다.

 비록 햇볕에 그을리긴 했지만 동동구리무만 발라도 예쁘기만 했던 그 때 그 사람들. 그땐 사람들의 마음씨가 동동구리무처럼 예쁘기만 했는데. 아! 좋아진 세상, 땡기고, 째고, 집어 넣고 부터는 그게 아니데. 그래서 이선희는 ‘아 옛날이여’하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가 보다.

 입성이 변변치 못하던 시절, 추운 겨울밤이었다. 찹쌀 떠억~ 찹쌀 떠억~ 하는 야윈 외침이 들리면 어머닌 맘을 졸였다. 행여 아무도 찹쌀떡을 안사줄세라, 그 맘 졸임은 끝내 지전을 들고 나섰다. 그 어머니에 그 자식이라 하지 않던가. 그 옛날을 솔방 보듬고 여지껏 고향을 지키고 있누나. 그래서 첫 시조집도 ‘육순의 마마보이’라 題 했지 싶다.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푸시킨의 시 중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다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 ‘지나간 것은 그리움이 되리라’라 했다. 시인에게 있어 지나간 어린 시절은 모르긴 해도 죽을 때까지 퍼내어도 계속 나오는 화수분이지 싶다. 다음엔 또 어떤 ‘어린 시절’이 나올지 사뭇 기대된다. 능곡 시조 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