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아침 산책 (327)

    감꽃 피던 날 

    자현당 이덕자 

졸음에 겨운 잎새를 다독이는 향기로운 초록 바람
오월의 오후
익은 황금 햇살
감나무 사이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상큼한 유년의 향기 머금고
감꽃 피는 날
풀꽃 물결치는 언덕 위 빨간 지붕집
거인 아저씨와 털복숭이 개가 낮잠에 빠져들면
수런수런 속살거리는 바람은
동네 꼬마들 감나무 아래 모아
아이들의 입가에 피어나는 꽃들의 수다 물결친다
나무 사이 새들의 날개짓 신명나게 추억을 퍼덕이면
털복숭이 개 짖는 소리 감나무 뿌리 흔든다
5월을 찢는 아저씨 고함소리에 초록잔치 사라져가고
개에 물린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새는 날아가고 개는 포승줄에 묶여져
텅 빈 자리 
순백의 감꽃 동화로 남아 있다

가만히 눈감으면 연두빛 잎새마다 
물고기 비늘처럼 퍼덕이는 유년의 향기
모두 다 무지개빛 이야기였네
소꿉놀이 감꽃 깔고 누운 자리였네
감상)

눌산 윤일광 거제문화원장,시인

詩라기보다는 어쩜 한 편의 동화다. 시인도 ‘순백의 감꽃 동화’라고 했다. 동화처럼 선명하게 그려지는 이미지 詩다. 빨간 지붕집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향기로운 초록바람이 부는 오월 어느 날 오후, 덩치 큰 주인아저씨는 낮잠에 빠져들었고, 털이 복숭아처럼 무성한 개도 아저씨 따라 오수를 즐긴다. 동네 꼬마들이 감나무 아래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아마 감꽃을 주워 소꿉놀이에 바빴을 것이다. 잠에서 깬 개가 으르렁거리며 꼬마들에게 달려든다. 놀란 아저씨가 털복숭아 개를 큰 소리로 말려보지만 어느새 한 아이가 개에게 물려 자지러지게 운다. 아저씨는 개를 묶고 나서야 상황이 종료된다. 시인은 이런 기억을 상큼한 유년의 향기로 기억하고 있다.

‘졸음에 겨운 잎새를 다독이는 향기로운 초록 바람’ ‘수런수런 속살거리는 바람’ ‘털복숭이 개 짖는 소리 감나무 뿌리 흔든다’ ‘물고기 비늘처럼 퍼덕이는 유년의 향기’ 이런 표현들은 시인의 시적감각이 매우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바람이 동네꼬마들을 감나무 아래로 불러 모았다는 상상력과 ‘수런수런 속살거리는 바람’과 ‘아이들의 입가에 피어나는 꽃들의 수다’가 대구를 이루면서 시적기교 또한 절묘하게 구성하고 있다.(눌산 윤일광 문예창작교실제공)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