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열린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관련 항소심에서도 안진회계법인 회계사 4명에 대해 원심 그대로 유죄를 선고했다. 안진회계법인 역시 1심과 같은 7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분식회계가 발생한 대우조선해양 2013~2015 회계연도 당시 외부감사인이다. 안진회계법인 감사팀은 ‘스텝 회계사-인차지(현장감사팀)-매니저-파트너(최종결정권자)’로 구성돼 있다.

당시 인차지였던 K회계사는 1년6개월, 매니저였던 B회계사는 2년6개월, 2014~2015년 회계연도 파트너였던 I회계사 1년6개월 등 원심과 동일한 형을 선고받았다. 2013 회계연도 파트너였던 U회계사에겐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로 분식회계를 지시한 혐의를 받는 고재호 전 사장과 김갑중 전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지난 7월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은 것과는 대비된다. 고 사장은 10년에서 9년으로, 김 CFO는 7년에서 6년으로 각각 1년씩을 감형받았다.

이날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도 항소심서 6년 징역을 받았으나 분식회계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다. 금감원의 특별감리 결과에 따르면 대우조선 분식회계는 2008년부터 2016년까지 9년간 방대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2006~2012년까지 대표이사였던 남 전 사장은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받았다.

이번 회계사 항소심 판결의 쟁점은 ‘미필적 고의’였다. 서울고등법원 형사8부는 이들이 대우조선해양 회계처리 부정 내지 오류 가능성을 인식했기 때문에, 감사범위 확대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했으나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부정한 회계처리를 눈감아줬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증거에 의해 인정되는 사정들을 종합하면, 공소사실 기재 각 위법행위에 관해 적어도 피고인들에게 미필적 고의가 있었음은 충분히 인정된다”고 설명헸다.

미필적 고의는 범죄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이를 용인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인화물질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면 위험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불이 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담배를 피우다 진짜 화재가 발생한 경우와 같다.

한 변호사는 “전문가적 판단이 필요한 행정형법에서 미필적 고의 판단과 살인죄 등 일반 형법에서 미필적 고의 판단 영역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게 맞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필적 고의는 인식측면과 의지측면이 있는데, 판결문에서는 감사보고서 허위기재의 전제가 되는 분식 정황의 표지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감사보고서 허위기재라는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외부감사 과정에서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있어도 시간적인 한계나 회사의 자료제출 거부 등으로 인해 적정 의견을 내는 외부감사 관행을 고려하지 않았다.

통상 회계사들 1명이 맡는 결산감사 기업은 10여곳이 넘는다. 한정된 시간안에 외부감사 업무를 끝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를 악용하는 일부 회사들은 계속 자료 제출을 거부하며 버텨왔고, ‘을’에 위치한 회계사들도 더이상 자료 제출 요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사실을 안 기업들은 분식회계를 반복하는 악순환이 계속돼 왔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외부감사 기능이 정상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회계법인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감사보수 덤핑 등 저가수주에 나섰고, 그만큼 감사품질도 하락했다.

일부 회계법인은 회계사가 아닌 퇴임 공직자 또는 경영자를 고문으로 고용해 이른바 ‘찍새’ 역할로 활용하기도 했다. 외부감사 업무를 수주해 오면 감사보수의 일정액을 수수료로 지급하는 식이다. 이런 관행은 회계사로 하여금 감사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유인을 줬다.

오는 2019년부터는 회계법인 대표에 대해서도 부실감사 책임을 묻도록 한만큼 이러한 관행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기업지배구조가 정상화되고, 내부감사·감사위원들에 대한 책임도 엄중하게 물어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인회계사법 34조 개정 필요성도 언급됐다. 현행 법에선 실무회계사의 지위를 감사보조자로 한정해 감사의견 형성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선 회계감사 보조자에 불과한 소속공인회계사가 회사의 회계담당자보다 훨씬 강도높게 미필적 고의로 처벌받았다. 공인회계사를 감사보조자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감사의견 형성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장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처벌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회계사들은 기업의 반발이나 부담을 핑계로 감사기준에 있는 의무를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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