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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우광미] '배추꼬랑이'우광미;수필가/수필과비평 신인상으로 등단

                    배추꼬랑이 
                                                                       
                                                          우 광 미

하루의 허물을 모두 가려줄 것 같은 어둠이 내린다. 어둠이 고요를 부르면  거리의 소리는 더욱 다가온다. 귀를 골목 어귀에 걸어놓고 익숙한 발자국을 기다리는 시간. 섣달 찬바람의 한기는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배어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속이 따뜻해지면 허기가 달래지려나? 이렇게 추운 날은 얼큰한 국물이 그립다. 귀가할 가족을 위해 끓이고 있는 찌개 냄새들이 담을 넘어 온다. 그 중에서도 김치찌개가 단연 으뜸이다. 서민적이고 식욕을 돋운다. 음식은 기억으로 먹는다 했던가. 생각나는 음식을 먹고 가지는 포만감은 정신적인 충족감마저도 들게 한다. 어머니의 손맛과 같은 추억이 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시공간을 넘어 그때의 기억 속으로 돌아가게 된다. 시간의 맛인가 흉내를 내어 보려하지만 그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
  사서 먹는 김치에 길들여진 입맛을 뒤로하고 직접 담가 볼 요량으로 배추를 사왔다. 살이 통통 오른 배추를 두 쪽으로 갈랐다. 삶의 옹이 때문인지 이파리 부분에서는 쉽게 칼이 들어가지만 밑 꼭다리와 배추 줄기 사이에는 손목에 몸무게를 실어야 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반으로 나누어진 배추는 가지런히 노란 속살을 드러낸다. 새벽의 기운을 머금었다. 몇 날을 품고 품은 이슬이라도 또르르 굴려낼 기세다. 배춧잎을 들어 사이사이에 소금을 뿌려둔다. 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간기가 약한 탓인지 아직 뻣뻣한 부분도 있다.
  덜 절여진 곳에 소금을 얹으려는데 피식 웃음이 일어난다. 지난날 나를 보는 듯하다. 유연하지 못하고 곧추세우기만 했던 나. 푸른 잎이 구부러진 방향을 보고 바람의 길을 알아낸 적이 있었던가? 새삼 햇살의 방향을 가늠해 보며 세상의 이치를 헤아려 본 적은 몇 번이나 있었을까?
  한 잎씩 이파리를 들어 올려 다시 소금을 친다. 그릇 속에 배추는 조금씩 숨을 죽이고 내려앉기 시작한다. 나긋하게 절여지고도 꼭다리 부분은 배추속의 심줄을 놓지 않는다. 잘 구부려져야 잘 절여진 것이다. 뙤약볕과 강풍에 시달려 그 유연함의 지혜를 아는 걸까? 소금에 기죽어 가는 배추를 바라보니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오늘처럼 칼바람이 불던 날, 살얼음이 뜬 장독 안에서 김치를 꺼내오던 어머니의 붉은 손이 생각난다. 얼음 속에서도 가지런히 배추 잎을 잡고 있던 꼭다리. 유년시절 밥상에는 김치를 썰고 난 후 남은 꼭다리도 잘게 썰려 종지에 담겨 올라왔다. 그럴 때면 슬그머니 종지를 밀쳐놓곤 했다. 아들 많은 집에 막내딸인 나는 늘 어린 아이였고 작은 자극에도 어머니의 치마폭에 숨기 일쑤였다. 가세가 기울자 집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정상에서 바닥으로 추락하는 멀미를 앓으며 어머니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간혹 몸이 좋지 않으시면 물에 말은 밥에다 잘게 썬 꼭다리를 드시곤 했다. 그러나 나는 꼭다리를 입에 대어본 적은 없다. 어쩌면 그런 힘든 삶이 싫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때가 되고 세상으로 나갈 즈음 어머니는 세상의 소금기에 길들여지는 고통을 참아내며 배추꼬랑이의 알싸한 맛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뿌리의 강인함을 기억하라는 뜻을 숨겨 두었으리라.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나온 세상은 달랐다.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야 했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짊어져야 했다. 점점 높아지는 삶의 고도는 숨통이 끊어질 정도로 속을 헤집어 놓을 때도 있었다. 그런 날 어머니는 모아둔 꼭다리를 한 움큼 넣어 김치찌개를 끓여 주셨다. 그럴 때면 숟가락으로 찌개 속의 꼭다리를 이리저리 지청구하며 먹었다. 극과 극은 상통해서 일까 쓰린 속을 매운 김치찌개가 신기하게도 달래 주었다. 그땐 몰랐다. 언 땅에서도 봄의 기운을 빨아들여 자신의 생명줄로 가족을 일구던 어머니의 삶을. 이제야 김치찌개의 맛은 꼭다리에서 더욱 깊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몸이 좋지 않거나 사는 일에 지치면 그 맛이 생각난다.       
  한때는 세상의 모든 것이 바깥에 있는 줄 알았다. 모두 내 안에서 비롯됨을 얼마나 돌아와서 나는 알게 되었는가.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며 세월에 거칠어지고 퇴색되어 뿌리가 잘리어도 밑동에 남아 있는 꼭다리. 세상의 공기가 들어와 김치에 군내가 나고 하얗게 골마지가 생겨 물러지더라도 잎들을 붙잡고 있다. 이것에서 어머니의 삶을 읽는다.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꼬랑이의 모습에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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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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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화숙 2018-03-09 08:41:02

    옛 기억이 절로 난다
    뻣뻣한 배추가 소금속에서 절여지듯
    우리의 인생도 소금에 절여지고 또한
    깊은 맛을 낼 줄 아는 참 삶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이 글을 읽고 아련한 추억 속에서
    또 한 장의 앨범을 본다
    친정 엄마가 그립고 또 보고싶어진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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