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
                                                          왕 순 조
*  

성경에는 과부를 약한 자의 대명사로 표현하고 있다. 여자 혼자 짐을 지었으니 고단한 사람이기는 해도 약한 사람은 아니다. 자녀를 둔 홀어머니라면 더욱 그렇다. 친정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혼자 되어 평생을 살아오셨다. 과부댁이라는 꼬리표는 늘 어머니한테 따라다녔다. 왕가네 과부라고 왕과부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과부가 무슨 뜻인지 알게 되면서는 그 말이 듣기 싫었다. 어머니를 놀리는 말 같아서 화가 났지만 반박할 마땅한 말은 없었다. 내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를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어머니가 우리를 두고 시집을 간다는 건 생각해 볼 수도 없었다.
 과부가 되고 싶어 된 사람이 누가 있고, 가난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누가 있을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운명일 뿐이다. 사람에게 행과 불행을 가리는 운명 자루가 있어서 그 속에 똑 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 돌이 들어 있다면 불행이라는 검은 돌을 꺼낼 사람은 없다.
 흰 돌만 꺼내고 싶은 것이 행복을 추구하려는 사람의 마음이다. 생계를 책임지고 부양해야할 홀어머니의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환경에 적응도 하셨지만 생활력이 누구보다도 강하셨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우리집이 어려워진 것은 막내가 태어난 지 한 달 되었을 때다. 아버지는 날도 밝지 않은 새벽에 장을 보러 가다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화물차가 모퉁이를 돌면서 기우뚱거리는 것을 보고 재빨리 피하긴 했으나 사고를 모면하지는 못했다. 길 옆 저수지에 뛰어 내렸으나 물속에 잠긴 바위에 부딪쳐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미 숨이 멎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어머니는 당신의 손가락을 돌로 내리쳐 피를 아버지 입안으로 흘려 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왼손 검지는 손톱이 없다.
 그때 어머니 나이 서른여섯, 젊디젊은 나이였다.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사고로 남편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삼베 쪼가리로 검지를 동여 맨 어머니가 아버지 관을 부여잡고 몸부림치던 모습을 당시 열 서너 살 났던 언니들은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는 오랫
동안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여섯 자식 입에 거미줄 치게 될까봐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셨다. 지금은 사고가 나면 보험금도 있고, 최소한의 보상처리가 되지만 그때는 아무런 보상이 없었다. 한학을 하시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버지는 성품이 고운 분이셨다. 화를 낸다거나 누구를 탓하는 법 없이 자상하셨고 자식에게도 자애로우셨다. 의령읍 상리라는 마을에서 알아주던 부농이라 살림도 넉넉했다. 그런데 몇 해째 흉년이 계속되어 장삿길에 나서게 되었다. 자식들 교육도 시킬 겸 읍으로 내려와 오일장에 물건을 내다팔았다. 자식들을 공부시켜 훌륭한 사람으로 키울 거라는 꿈을 어머니와 같이 세우며 사시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홀로 된 어머니는 육남매를 키우느라 온갖 고생을 하셨다. 아직 어린 자식들은 어머니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지 못 했다. 과부집이라고 넘보고 해코지하는 사람도 있었다. 집안 기둥이 무너진 우리 집을 도와준다는 핑계로 족보 책을 보관하여 준다고 가져가려는 사람도 있었다. 딸을 양녀로 주면 공부시켜 잘 키워 준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머니는 고생되어도 내 품에서 키운다며 모두 거절하셨다.
 형편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생선을 받아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파셨다. 다 팔고 어두워진 고갯길을 넘어 돌아올 때면 돌을 주워 올려놓고 침을 세 번 뱉고 지나가는 처방으로 무서움을 이기기도 하셨다. 물건을 팔면 돈을 받기도 하고 때론 곡식으로 받아오기도 하셨다. 호기심이 많던 나는 따라오지 말라 하는데도 억지를 부리며 따라나섰다. 집집마다 방문을 하면 거의가 안면이 있었다. 물건을 사며 나에게 먹을 것도 주시고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가끔은 남의 집 대문 안에 들어서면 “안사요.” 하는 소리가 어린 마음에 얼마나 서운했던지 이 나이가 되어서도 나의 가게에 물건 팔러 들어오면 그 말은 쓰지 않고 다른 말로 표현한다.
 단칸방에 어머니와 우리 육남매가 모여 잠을 잤다. 잠을 자다 어머니의 혼잣말을 듣게 되었다. 기름이 다 되어 호롱불 기름통에 기름을 부으니 불씨가 확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저래 살아나면 얼마나 좋을까?” 그땐 내가 너무 어려 잘 몰랐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어머니는 심지가 깊은 분이라 어린 자식들 듣는 데서 팔자 탓을 하거나 한탄을 하지 않으셨다.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데 온 힘을 쏟으며 동동걸음을 치시는 어머니지만 마음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던 게다.
  이런 일이 있었다. 교통사고가 나서 우리 동네 부면장 막내딸이 죽었다. 동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일부는 병원으로 몰려갔다. 공연한 호기심에서 나도 갔다 온다고 하니 어머니가 말리셨다. 그래도 간다고 우기니까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셨는데 그런 일을 다시 떠올리고 싶
으냐고 호되게 나무라셨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어린 나이에 겪은 참혹한 기억을 되뇌이게 하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와 언니들에게서 말로만 들었지 내 나이 네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들은 것을 토대로 아버지의 삶을 유추하고 상상하는 것이 전부다. 어릴 때 일이고 사이좋은 형제들 속에 살면서 아버지라는 존재도 얼굴도 모르고 살아왔던 것 같다.
 어머니는 장날에 밀주를 만들어 양조장에서 받은 술과 섞어 팔기도 했다. 쌀이 턱없이 모자라던 그 시절엔 쌀과 누룩으로 술을 만드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세무서 사람 몰래 하느라 장독 밑에도, 땔감나무 밑에도, 땅을 파고 묻기도 하고, 이웃집에 숨겨 놓기도 하였다. 얼마나 아슬아슬한 시간 속에 장사를 해야 했는지 늘 불안해 하셨다. 직원들이 밀주 단속하러 가끔 나오면 문을 잠그고 집을 비우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가며 생계를 위해 노심초사하셨다. 어머니의 동동주 빚는 솜씨는 맛이 좋기로 소문났다. 밀농사를 지어 누룩을 직접 만드셨다. 좋은 찹쌀을 구해 찐 밥을 만들어 전주를 내고 동동주로 빚으셨다. 어느 한 가지 허투루 하시는 법 없이 정성을 다 하셨다. 나이 드셔서까지 술 빚는 일을 계속 하셔서 ‘남산 밑 동동주 할머니’라는 별호가 붙었다. 철없는 나는 어머니가 식당 하는 것이 싫고 술 드시는 것은 더욱 싫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라도 마음을 달래는 것인데 그때는 그런 어머니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어머니지만 기억력이 좋고 계산이 빨랐다.
  많은 손님들의 외상값을 장부도 없이 외우는 것은 물론 계산과 신용을 지키는데 철저하셨다. 바쁜 중에도 자식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좋은 속담을 들려주셨다. 어디 가서 살아도 내가 먼저 남을 배려하고 이웃 어른을 공경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신 말씀은 내가 살아가며 늘 되새기는 어머니의 가르침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딜 가나 주위의 나이 드신 분들에게 정이 가고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이 우러난다. 어머니는 몇 해 전 먼 길을 떠나셨으니 지금은 추억으로나 그릴 뿐이다. 올망졸망 육남매를 거느린 가난한 홀어미의 고초를 생각하면 가여워서 가슴 절인다. 밥상을 펴고 앉아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기억나는 대로 쓰며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나마 글로 써서 어머니를 추억하고 위로할 수 있다면 그동안 수필쓰기 배운다고 쫓아다닌 보
람이 있지 않을까.

거제타임라인  webmaster@gjtline.kr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