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

                                                 윤  석  희

 구두 한 짝이 나뒹군다. 유리 조각이 흩어졌다. 아스팔트에 핏물이 배어있다. 하얀 줄도 쳐 있다. 눈을 감어 버린다.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도 길이 있고 차가 다니니 사고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너무 자주 보게 되어 도로에 나서기가 겁이 난다.
  프랑스로 기억된다. 파리 외곽지대로 나갔다. 도로의 중앙 분리선에 조경을 해 놓았다.  이 미터 정도의 폭이다. 몇 시간을 가도 끝이 나지 않는 길이다. 삭막한 차도에 푸른 나무들이 늘어서 있으니 기분이 상큼해 질 밖에. 무슨 큰 발견이라도 한 듯 ‘바로 저거구나’ 머리를 쳤다. 보기 좋은 것은 일단 제켜 두기로 한다. 가운데를 비워두고 양쪽으로 도로가 나 있으니 정면충돌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러웠다. 땅도 너르고 자본도 넉넉해야 기나긴 차로를 저렇게 할 수 있으리라. 별안간 거리 두기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디 도로 뿐이겠는가. 사람과 사람도 마찬가지다. 친구 사이건 이웃 간이든 부모 자식이건 심지어 부부 사이도 그렇다. 거리를 두고 지내야 오래가고 온전하다. 상대와 지나치게 가까워지려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상처받고 돌아서고 만다. 또 하나가 되려고 밀착시키려다 부서지고 깨져 버린다.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관계가 이루어지면 급물살을 타려고 서두르며 수선을 떤다. 호들갑스럽게 치장한 과장된 행위로 가까워지려다 급기야는 침몰하고 마는 사람들을. 서둘러 인정받고 싶어 관심을 독차지 하려고 조급해 하다가 금이 가고 마는 것이다.
  거리 두기는 필요하다. 거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이란 소유고 집착에 불과하다. 세상에 완전한 관계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부부가 일심동체라 했나. 과연 온전한 합일을 이루는 순간이 있기는 한 걸까. 바램이고 구호에 불과하다. 욕심을 절제하고 한발 물러서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타인을 바라봄이 필요한 것이다. 떨어져서 지켜보고 바라보면서 상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제대로 볼 수도 있다. 너무 가까우면 그림자에 가려서 실체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진다. 또렷하고 냉철하게 보기 위해서도 거리 두기가 필수다. 떨어져 있어야 존재의 신비함도 은밀함도 느껴지고 대상에 대한 그리움도 솟아난다. 떨어진 간극을 공유의 공간으로 한다. 함께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볕을 쪼여서 믿음과 사랑의 싹을 틔워야 한다.
  자신을 보는 것은 어떠한가. 적당한 사이를 두고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면밀하고 투명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가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과정이며 사유의 공간이다. 물론 자신에게 향하는 불신도 배제해야겠지만 무조건의 인정도 절제해야 한다. 그래야 나를 직시하고 응시하게 된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분별력도 생긴다. 급기야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거리두기는 마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고 여백이다. 언젠가는 만날 수도 있는 평행선이다. 서로가 공유해야만 하는 공간이다. 공유는 소통을 가능케 하고 관계의 평형을 유지 시켜 주고 성숙한 관계로의 발전을 도모한다. 불완전한 하나 되기를 거부하고 독립된 두 개체가 화합할 수 있는 공간 확보가 거리 두기다.
  자연과 사람에서도 그러하다. 직접 가서 찍어 온 사진 속의 달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밤하늘의 신비함도 별과 달을 거리를 두고 보기에 가능하다. 여기에서 시도 짖고 그림도 나온다. 바람과 햇살도 느껴져야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것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면 허망할 뿐이다.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개 짖는 소리조차 멀리서 들리면 아련하지 않던가. 사이가 상상과 꿈과 창조를 촉발 시킨다.
  전시장에서 그림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좋은 작품을 바짝 붙어 보면서 별 것 아니라고 지나치기 일쑤다. 그러다 우연히 거리를 두고 보며 새것을 보듯 놀랄 때가 많다.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것이 다르게 보일 때 느끼는 신선함. 때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과 자연. 보는 주체와 보여 지는 대상이 같을 수는 없다. 대상을 응시하되 몰입은 위험하다. 몰아의 경지를 체험하되 몰입은 피할 일이다.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안전장치다.
  사람들의 관계에서 중앙 분리선을 인위적으로 긋고 통제하는 것은 못할 일이다. 사고방지를 겨냥해서 조경으로 여유 공간을 도로에 마련하듯 타인과도 아름다운 사이를 두고 유지할 일이다. 너와 나 가운데도 공유공간을 두고 끊임없이 함께 가꿀 일이다.
  눈을 뜬다. 분리선을 지우고 차단막도 제거하고 양쪽 사이에 꽃과 나무로 가꾼 도로를 꿈꾸어 본다. 그곳에서 너와 내가 마주 보며 달려보고 싶다.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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