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58」             
  문동폭포길 111

   윤  윤  주  

  청아한 물소리에
  마음이 씻겨가네

  새 움의 가지마다
  상큼한 봄 향기는

  폭포수 시 소리길에
  시인되고 시가 되고.

  초입의 문화원은
  사군자 배움의 터

  묵향을 붓에 담아
  목란을 치노라면

  옛 선비 고졸한 풍류
  화선지에 피어난다.

 ◎ 사람답게 사는 일의 어려움
 관상석(觀賞石)은 보고 즐길 수 있는 가치를 지닌 돌을 말한다. 관상석은 크기에 따라 수석(壽石)과 정원석(庭園石)으로 나눈다. 수석은 한 자(30㎝) 내외이고 정원석은 열 자(3m) 내외다. 관상석 중 수석의 기본은 밑자리이다. 윗부분이 아무리 빼어나도 밑자리가 불거져 있으면 명석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연출이 안 되기 때문이다.  좌대로 연출할라치면 좌대의 두께가 깊어야 하고 수반 연출이면 운두가 높은 것을 써야 하기에 품세를 그르치게 된다. 돌의 윗부분이 조금 빠진다 해도 밑자리가 자른 듯이 반듯하면 수석감으로 선택된다. 그만큼 밑자리가 중요하다. 그래서 관상석의 기본을 밑자리라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기본이 있다. 한때 홍익광고협의회의 광고 카피에 ‘기본이 서는 나라’가 있었다. 기본이 서는 나라를 두고 공자께서는 논어(論語) 안연(顏淵) 편에서 이렇게 가르쳤다. 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사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君君 臣臣 父父 子子”였다. 이는 임금은 임금답게 나라를 편안히 하고, 신하는 신하답게 올바른 정책을 내놓으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모범을 보이고, 아들은 아들로서 책임을 다한다는 뜻이다. 문신(文臣)이 돈을 탐하지 않고, 무신(武臣)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태평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치가는 정치가답게, 기업가는 기업가답게, 학자는 학자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하는 것, 이것이 기본이 서는 나라가 아닌가 싶다. 사람(人)이라는 글자는 두 사람이 마주하여 다소곳이 인사하는 모양이라고 한다. 인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人間)에 행해지는 예절이다.
 
일상생활에서 예절 있는 행동거지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위계질서를 원만하게 유지해주는 윤활유라 할 수 있다. 사람(人)보다는 인간(人間)이라고 하는 말의 뜻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결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뜻이 인간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마찰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 마찰의 완충재가 예절이다. 그 예절이 수직적일 때, 이를테면 나라와 나 사이에는 옳음, 의(義)가 있어야 하고, 어버이와 나 사이에는 진솔한 친(親)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평적일 때, 즉 부부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의 별(別)이 있어야 하고, 친구 사이에는 믿음(信)이라는 완충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도덕성의 타락으로 수직적이건 수평적이건 간에 예절이란 위계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기주의와 배금주의 때문이다.
 
명심보감 안분편(安分篇)에 안분신무욕 지기심자한(安分身無辱 知機心自閑)이란 말이 있다. 즉 분수를 알아 살아가면 몸에 욕된 일이 없고, 자기 자신을 알고 처신하면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없다는 뜻이다.오늘날과 같이 이기적이고 물질 만능의 시대에 살면서 분수 ㅊㅇ라ㅏㅏㅡ 지키기를 강조한다는 것이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사고라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사회가 복잡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우리는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자족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알며 상대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수분(守分)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다. 

   거제도 말 없는 어부는 늙어 果是 丈夫더라
   行客을 봐도 본숭만숭, 구름을 봐도 본숭만숭
   한평생 헤진 파도의 그물 끈만 깁더라.
      정완영, 巨濟島 紀行 詩抄, -老漁夫에게
정완영 시인께서 거제도 어느 산허리를 돌아 돌다가 바닷가에서 오막살이를 만났단다. 다 낡은 그물을 걸어놓고 헤진 그물코를 깁고 앉아 있는 늙은 어부, 행객을 보고도 말이 없고 구름을 보고도 말이 없다. 생애의 바다, 생애의 그물코만 깁고 있더란다. 그 늙은 어부는 분수를 알아 욕심이 없고 근심과 걱정이 없어 보였지 싶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인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봄, 아테네의 감옥에서 태연자약하게 독배를 마시고 철인답게 죽었다. 그는 죽기 전에 그의 막역한 친구이자 제자인 크리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진실로 오늘을 사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 믿는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현대시조발발행인 능곡이성보

시조 작품 〈문동폭포길111〉은 상큼한 봄 향기가 가득한 문동폭포길에서 느낀 감흥을 2수 연작으로 읊은 윤윤주 시인의 작품이다. 문동폭포는 운문폭(雲門瀑) 이라고도 불리우는 거제 유일의 폭포다. 이 일대를 소요동(逍遙洞)이라 이름 붙인 이들은 유배객이었다. 소요는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니는 것으로 산책과 같은 뜻이다. 소요동에 유배를 왔던 선비들중 상재(像齋) 최숙생(崔淑生)과 용재(容齋) 이행(李荇)이 20여 편의 시를 주고받으며 유배의 시름을 달랬다. 이들은 연산군 10년(1504년)에 일어난 갑자사화 때 화를 입었다. 청아한 문동폭포의 물소리는 고뇌에 찬 마음마저 씻어 준다. 거기다 가지마다 돋아난 새 움은 상큼한 봄 향기를 뿜고 있다.

 문동폭포길은 유배 온 선비들로 해서 시 소리길이 되었다. 시가 들어 있는 배너 수백 개가 길가에 줄지어 있다. 그 길을 걷고 나면 저마다 시인이 되고 읊조리는 것은 하나 같이 시이다. 초입에 있는 거농문화예술원은 서예가이자 시인인 거농(巨農) 주명옥(朱明鈺) 선생이 세운 곳이다. 거농 선생은 이곳 출신이다. 이 문화예술원의 문하생들이 사군자를 익히고 있으며 시인은 실무를 관장하는 실장을 맡고 있다. / 묵향을 붓에 담아 묵란을 치노라면 / 日日新인데 / 옛 선비 고졸한 풍류 화선지에 피어난다. /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 묵란을 치노라면 / 이다. 묵란은 그린다고 하지 않고 친다고 하며, 친다는 것은 눈보라가 세게 몰아 붙인다 할 때나 소리 나게 세게 때리거나 두드릴 때, 떡메로 내려 짓이길 때 친다고 한다. 섬뜩하기도 한 칼로 목을 친다고도 한다. 난을 그린다고 할 때 마음속의 응어리를 밖으로라도 내뿜는 운필로 시종 되기에 난을 그리고 나면 마음속의 울화가 희석됐을 것이고, 불평불만을 바가지 긁어 해소하고 강아지 배때기 차 깨갱거리게 해서 해소하듯 품위 높은 해소 수단으로 난을 쳤던 것이다.

 참을 인(忍)자를 풀어보면 ‘刀+心’, 곧 날카로운 칼날로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뜻 모음 글자이다. 이처럼 칼날로 꼼짝 못하게 울분을 물리적으로 참아내기도 하지만 정신적으로 마음속에서 삭혀 이를 산산이 뿜어내는 방편으로 난을 치기도 했다. 난을 그릴 때 난심(蘭心)에서 분출이라도 하듯 잎을 방사시키면서 억하 심정을 방출했을지도 모른다. 추사가, 대원군이, 민영익이 친 묵란이 그러하였다. 고졸(古拙)은 기교는 없으나 예사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음을 말할진데 화선지에서 피어나는 고졸한 풍류로 해서 격이 있는 시조가 되었다.

  「금요거제시조選」을 시작한지 어느 사이에 3년이 되었다. 거제시조문학회 회원들 158편의 시조를 감상하는일, 금요일이 어찌나 빨리 오는지 버거웠지만 즐거웠다.〈거제타임라인〉에 고마움을 전한다.-능곡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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