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76」
     낭도 추억

      윤미정
여우를 닮았다고
狼島라 불리는 섬

단짝의 손 맞잡고
싸목싸목 걷다온 길

다정한 갱번미술길
이방인을 반기네.

주상절리 둘레길에
간간이 부는 바람

청남빛 바닷물에
몸과 맘이 흠뻑 젖어
   
섬과 섬 폴짝 건너니
쏠쏠해라 그 재미.

*낭도-전남 여수 화정면 낭도리
*싸목싸목ㅡ천천히의 전라도 사투리
*갱번ㅡ갯가의 전라도 사투리

 ◎상납(上納)
상납(上納)은 정부에 조세(租稅)를 바친다는 뜻이다. 이 상납이란 말이 어느 사이에 윗사람이나 상급 기관에 뇌물의 성격을 띤 돈이나 물건을 바침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뇌물이란 사사로이 이용하거나 이권을 얻을 목적으로 일정한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매수하기 위하여 넌지시 주는 부정한 돈이나 물품을 말한다. 뇌물이 횡횡하는 오탁한 세상, 망국의 근원이다. 그래서 신왕조마다 이를 경계했다.

 일찍이 마케도니아 왕 필립은 “황금을 실은 마차가 들어갈 수 있는 도시라면 , 어디든지 점령할 수 있다.”고 했다. 돈으로 매수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다 정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쟁에 의해서 빼앗긴 곳에는 싸우다가 죽은 전사의 넋이라도 남는다. 그러나 부패로 망한 곳에는 수모와 한탄 이외에 무엇이 남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곳에는 뇌물이 있었던 모양이다. 

 <孟子>에 보면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될 때 받는 것은 청렴을 손상시키고(可以取 可以無取 取 傷廉), 주어도 되고 주지 않아도 될 때 주는 것은 은혜를 손상시키며(可以與 可以無與 與 傷惠), 죽어도 되고 죽지 않아도 될 때 죽는 것은 용기를 손상시키는 것(可以死 可以無死 死 傷勇)이라고 당부했으니 말이다.

 뇌물은 神도 설득시키고 바위도 깨뜨린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도 잠시이고 마음이 변하거나 받는 자의 처지가 바뀌면 너무 작았다든지 계속되지 않았다든지 하여 오히려 더 잘못 보여 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조선조 성종 임금은 민정(民政)을 가장 많이 돌아보신 분인데 하루는 한밤중에 초라한 변복을 하고 늙은 선비의 집 앞에 서게 되었다. 삼경에 들리는 글 읽는 소리에 슬쩍 방안을 들여다보니 백발노인이 낭랑한 목소리로 읽고 있었다.
 
임금님은 주인을 불러 잠깐 쉬어 가기를 청하니 기꺼이 맞는 노인의 방에는 「我獨無蛙不得志: 나 홀로 개구리가 없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뜻을 알 길이 없어 물었으나 노인은 대답을 꺼린다. 임금님은 사정을 했다. 노인은 「내 제자 30명이 다 급제를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스승인 나는 아직 급제를 못했다」 하며 짐승들 사회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논에서 황새와 뜸부기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서로 자기 목소리가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다투던 그들은 독수리 왕에게 재판을 받기로 했는데 이때 자신이 없는 뜸부기는 개구리 한 마리를 날개 속에 넣고 가서 슬쩍 상납(?)을 했다. 마침 배가 고팠던지 달게 삼킨 독수리는 「황새의 목소리가 참 좋다. 그런데 뜸부기 목소리는 그보다 좀 낫구나」하면서 내일 다시 오라고 했다. 말하자면 재심을 하자는 것이다. 다음날도 뜸부기는 개구리를 감춰갔지만 황새는 목이 빠지도록 발성 연습만 하다가 쉰 소리를 해서 그만 지고 말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황새는 「나 홀로 개구리가 없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하늘을 빙빙 돌았다는 것이다. 듣고 있던 성종 임금은 오늘 낮에 보니 과거가 있다는 방문(榜文)이 붙었더라면서 꼭 응시하라고 부탁한 후 돌아갔다. 

 대인관계 지능지수가 두 자리 숫자에 불과하다는 평을 듣는 나는 그래서인지 하는 일마다 꼬여 힘든 삶을 살아왔다. 운명이라 받아들이긴 하지만 뒷맛은 개운하지 못하다. 하지만 어쩌랴.

  짙푸른 저수지 물 먼발치로 밀쳐 둔 채
  세월은 코잠 골아 깨어날 줄 모르는데
  기습한 그리움마저 환청 같은 전자음.

  산협을 감돌아 온 물바람 앉혀놓고
  한 자락 목청 뽑아 육자배기 부를거나
  술잔에 가득한 노역 팔자거니 마실거나.

  가난이 덕지덕지 파리처럼 엉겨 붙은
  물 거울에 비친 얼굴 물살로 지워 본다
  거머쥔 절망의 문고리 놓을 힘도 이젠 없다.
           拙詩, ‘근황 4’, 전문  

 변복한 성종을 만났던 백발의 노인은 그 후 개구리 ‘蛙’ 자를 놓고 응시, 급제했다고 한다. 大望을 가진 분들 틈에 끼여 이 장마통의 여름에 개구리나 잡으러 나서 볼까나. 아서라 말아라, 명심보감 성심편(省心篇)에 이르지 않던가. 천약개상(天若改常)이면 불풍즉우(不風卽雨)요 인약개상(人若改常)이면 불병즉사(不病卽死)니라. (하늘이 만약 상도(常道)를 어긴다면 바람이 불지 않아도 비가 내릴 것이요, 사람이 만약 상도를 어긴다면 병이 들지 않아도 곧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그렇고 말고다. 나는 맺힌 게 많아 지금 죽어서는 될 일이 아니다. 개구리 잡을 생각을 하다 말고 얼른 집어치우곤 냉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다. 그 시원함이라니…呵呵大笑.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현대시조발발행인 능곡이성보

시조 작품 〈낭도 추억〉은 여우섬이라 불리는 낭도에서의 단짝과 함께한 추억을 2수 연작으로 읊은 윤미정 시인의 작품이다.

 전남 여수시는 남쪽으로 여러 개의 섬 들을 거느리고 있다. 거느린 섬과 섬을 다리로 이어 여수는 어느 사이에 ‘해상교량 의 도시’가 되었다. 그 섬들이 어찌나 미쁜지 ‘섬섬옥수’에서 차용하여 ‘섬섬여수’라 칭하는 모양이다. 여수의 끝자락에 여우섬이라는 狼島가 있다. 지난해 여수와 고흥을 잇는 5개의 해상교량이 완공되면서 낭도는 여수 내륙과 연결되었다.
 ‘狼島’는 글자 그대로 보면 늑대섬이겠는데 여우섬이란다. 조금은 헷갈리나 남도 특유의 표현방식이지 싶다. 이를테면 이리나 여우나 그것이 그것 아니냐는 두루뭉술한 표현 말이다. 거제의 인근에 있는 장사도(長蛇島)의 경우를 보면 원래 지명은 누비섬(누에섬) 즉 잠사도(蠶絲島)였는데 왜정 때에 장사도로 바뀐 것과 같은 맥락으로 ‘狈島’가 ‘狼島’로 바뀐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의 짐작임)
 낭도에 올 초 ‘갱번미술길’이 조성됐다. ‘갱번’은 갯가의 전라도 사투리다. 거제에선 ‘갱빈’으로 부른다. 그래서 ‘갱번미술길’은 갯가를 따라 조성된 미술길이란 뜻이다. 공공 미술 조성사업으로 진행된 ‘갱번미술길’은 갤러리, 낭도 마을 쉼터, 낭도 포토존으로 나뉜다. 전체 구간은 3km 정도인데 핵심은 마을 초입부터 1km 정도 이어진 담벼락 갤러리다. 파스텔로의 벽화와 다양한 색감의 타일 등으로 꾸민 담장이 이방인을 반긴다. 여수지역예술인들의 작품과 시화, 주민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 130여 점도 액자 형태로 걸려 있다.

 시인의 역마살을 아는 사람은 안다. 그래서 한시도 가만 못 있는 시인이 이번엔 낭도를 찾았단다. 여우를 닮은 섬 낭도에서 / 단짝의 손 맞잡고 싸목싸목 걷다온 길 / 바로 갱번미술길이다. ‘싸목싸목’이 ‘천천히’의 전라도 사투리라고 하는데 마치 눈길을 조심스레 걷는 것 같은 정겨운 맛을 지닌 사투리라 하겠다. 다정한 ‘갱번미술길’은 짓궂은 장마통에도 이곳까지 찾아온 이방인을 반기고 있었다.

 주상절리 둘레길에 간간이 바람이 인다. 안 그래도 촉촉한 旅心인데 / 청남빛 바닷물에 몸과 마음이 흠뻑 젖는다. / 어느 사이에 시인은 18세 소녀가 된다. 그것도 낭낭 18세다.
 섬과 섬을 폴짝폴짝 건너는 재미, 쏠쏠하고 말고다. 재미는 재미대로 쏠쏠하게, 그러는 사이에 〈낭도 추억〉은 쏠쏠한 시조 작품이 되었다. 그 淸福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다들 기다린다는 七末八初, 나는 언제 휴가 한번 가려나. 아이고 내 팔자야.   앗 참 ‘단짝’이 누군지 궁금하기만 하다. -능곡 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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