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207」
    달빛 산행

     윤 미 정 
   해 저문 여덟시에 
   하나둘 모여든다

   모두들 반가움에
   닉네임 소개하고

   발사진 인증하고선
   산을 향해 오른다.

   새우살* 목표삼아
   시작한 야등*이라

   거친숨 몰아쉬며
   정상석 인증하고

   땀방울 쓸어내리며 
   거침없는 하산길.

    *새-새해에 
     우ㅡ우리
     살ㅡ살빼자
    *야등ㅡ야간등산

◎ 재능(才能)
경칩이 목전이라서인지 산천의 색깔이 연두색으로 바뀌는 걸 실감한다. 승춘무동(勝春無冬),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산 넘어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박인희 청아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태까지 ‘조붓한 오솔길’을 ‘오붓한 오솔길’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조붓하다’는 ‘조금 좁은 듯하다’를 의미하는 우리말이다. 며칠 전 대보름날이었다. 진주에서 왔다는 한 가족의 방문이 있었다. 조손(祖孫)이 함께한 10여 명의 가족이었다. 그중 털모자에다 마스크까지 한 할머니께서 인사를 건네는 나의 손을 맞잡으셨다. 그리곤 미니장가계를 보여 주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좋은 시까지 감상하게 하였다며 싯귀까지 암송하셨다. 할머니께서 암송한 싯귀는 이러했다. 이곳의 후정에는 40여 평의 유리온실이 있는데, 처음에는 난 전시실로 사용하였는데 사정이 있어 ‘예술 마당’이라 당호를 짓고는 시 배너와 함께 실생 산수화와 수석과 정원석을 연출하고 있는 곳이다.
 시 배너에는 拙詩 ‘양란(養蘭)•3’이 실려 있다.

   촉마다 일고 있는
   생명의 숨결일레

   기도같이 가뭇한 몸짓
   예고된 사랑이기

   이제사
   깊고 깊디 병
   눈물임을 내 알았다.

   정처를 알 수 없는
   한 가닥 떠돌이 바람

   정갈한 기가 넘쳐
   혼쭐 하나 맑히는가

   여지껏
   잊고 살아온
   엄니 손을 다시 본다.

 할머니께선 둘째 수 종장 ‘여지껏 잊고 살아온 엄니 손을 다시 본다’를 암송하신 것이다. 짧은 시간에 싯귀를 외우셨다니, 놀란 나머지 연세를 여쭈니 43년생 83세라 했다. 나보다 네 살 위의 누님이셨다. 십여 명의 일행 중 제일 고령의 할머니만 시에 관심을 두셨으니 할 말을 잊었다. 모자와 마스크 사이로 보이는 야윈 모습과 검버섯, 하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다.  
 
채옹(蔡邕, 133-192)은 후한 말기의 학자로 학문과 글씨, 음악에 뛰어났고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다.  후한서(後漢書)에 있는 기록이다. 오회(吳會) 지방 사람이 오동나무를 태워 밥을 짓고 있었다. 이웃에 있던 채옹이 그 나무 타는 소리를 듣고 훌륭한 목재임을 알았다. 타다 남은 오동나무를 얻어 거문고를 만들었다. 과연 그 소리는 상상한 대로 영롱하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거문고 끝이 불에 탄 것을 보고 그것을 ‘焦尾琴’이라고 불렀다. 하마터면 땔감으로 끝날뻔한 오동나무를 채옹이 명품 거문고로 만든 것이다. 채옹이 진류현에 살던 때이다. 이웃이 술과 음식을 내어 채옹을 초대하여 자주 그곳에 놀러 가 취하도록 마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손님이 병풍 뒤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는데, 대문 밖에서 그 소리를 듣고 채옹이 이렇게 말했다. “허어, 연주 속에 살기가 들어 있다. 어찌 된 일인가?” 그러고는 주인에게 다시 돌아간다고 전하라고 일렀다. 이를 전해 들은 주인이 황급히 뒤를 쫓아 그 연유를 묻자 채옹이 몹시 실망한 표정으로 자세히 이유를 전했다. 그러자 거문고를 탄 사람이 말했다. “제가 현을 탈 때 사마귀가 매미를 노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매미가 날아갈 듯하여 저는 사마귀가 매미를 놓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마음이 살기가 되어 소리에 나타났단 말입니까?” 채옹은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

 장즐(張騭)의 문사전(文士傳)에는 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채옹이 오(吳)지방 사람에게 말했다. “내가 일찌기 회계(會稽)의 고천정(高遷亭)을 지나는데 그 집 서까래 가운데 동쪽으로 열여섯 번째 있는 마디의 대나무를 보니 피리를 만들만 하드만, 그래서 그것을 취하여 피리를 만드니 뛰어난 소리가 났다네. ”채옹은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 와 사용되고 있는 ‘영자팔법(永字八法)이라는 서체 연습방식을 고안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서예의 기초적 수련법인데, 길 永 자에 서예에 써먹을 수 있는 모든 테크닉이 함축되어 있어, 길 永 자를 기초로 서체를 연습한다는 이론이다. 채옹은 동탁에 의해 기용되었으나 동탁이 여포에게 살해당하자 결국 60세의 나이로 옥에서 죽었다. 사람의 재능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재다능하다는 것을 역사적인 사실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시조의 종장을 암송한 82세의 할머니, 초미금을 만든 채옹을 떠올리며 내 자신이 자꾸만 작아짐을 느낀다.(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능곡이성보시인계간현대시조발행인

시조 작품 〈달빛 산행〉은 새해에 살빼기를 작심한 시인이  달빛 산행에서의 감회를 2수 연작으로 읊은 윤미정 시인의 작품이다. 등산은 말 그대로 산에 오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생활체육으로서 등산이 활성화된 나라다. 그 이유로는 전국 어딜 가도 뒷산이 널려있는 지리적 특성과 산이 대부분 낮은 데다 완만한 노년기 지형이라 위험도가 낮은 점, 등산로가 잘 정비 되어 있는 점, 맹수가 거의 없는 점 등이다. 등산은 건강에 많은 이점을 제공하는 신체적 활동이다. 등산을 통해 신체적인 활동을 즐기면서 심혈관 기능과 근력, 유연성을 향상 시킬 수 있다. 또한 등산은 스트레스 감소와 정서적인 안정을 가져다주며 자연과의 교감과 아름다운 경치 감상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 시킬 수 있다. 등산을 통해 건강을 관리하고 즐기는 것은 우리의 삶에 긍적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산 정상을 오르는게 목적이 아닌 올레길이나 둘레길을 걷는 도보여행 등 등산도 다양해지고 있다. 다양해진 등산 중 하나가 달빛 산행이다.

 며칠 전 정월대보름을 전후한 밤이었지 싶다. / 해저문 여덟 시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 약속 시간이 여덟 시라 일행들이 모여들자 닉네임을 소개한다. 시인의 닉네임은 오드리햅번이라 들었다, ‘발사진 인증’이 뭐냐고 하였드니 일행들이 둥글게 모여 서서 등산화를 신은 오른발을 내밀어 사진을 찍는 의식(?) 이란다. ‘새해에는 우리 살 빼자’ 다짐하고 시작한 야간 등산이다. 야등 이라기에 처음엔 ‘야동’ 인줄 알았다 하니 ‘개 눈엔 뭐만 보인다.’고 오히려 역습을 당했다. 야등엔 적절한 준비와 주의를 기울여 안전하게 등산을 즐겨야 하리라. 정상에서 고현만의 야경을 즐기다 보면 야등의 묘미를 만끽하리라. 시인은 자칭 ‘하산 전문 산악인’이라 하산길은 거침없었다. 신중년 세대에 각광받는 ‘야등’, 건강한 삶과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그들이 부럽기만 하다.<능곡 시조 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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