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186」

  비 몽 사 몽
  (내시경 회복실에서)

  윤 미 정

비위가 약해선지
온 정신에 할 수 없어

 하얀색 프로포폴 꿈나라 안내하고 시간 지나 눈을 뜨니 3분 밖에 안되었다고 더 자라 말을 하네. 눈은 감았으나 주변의 소리들이 들려오는데 휴대폰 만지면서 한 소리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은 어떻게 버는지 일장연설 중인 분도 계시고 무의식중 행동들이 너무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데 간호사가 시간 되었다고 일어나라는 순간, 꿈인지 생시인지 아뿔사 아쉽게도 돈 버는 이야기 적어놨어야 했었는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내시경실 시간들.

◎‘이별의 노래’와 사랑
예년보다 하루 늦다는 설악산의 단풍 소식이 전해지고 본격 가을이 시작되었다.  이맘때면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하는 〈이별의 노래〉가 절로 읊조려진다. 1962년 11월 초 어느 쌀쌀한 늦가을 밤에 대구를 찾은 해군 정훈군악대 지휘를 맡고 있던 김성태 작곡가가 박목월시인과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박 시인이 새로 지은 시라면서 <이별의 노래>가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그리곤 곡을 붙여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뭉클한 감동과 깨끗한 시상에 감동한 김성태는 여관에 돌아오자마자 즉시 시에 곡을 붙인 것이 그 유명한 <이별의 노래>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은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박목월 시인은 62세를 일기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하지만 그와 얽힌 애화는 뭇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또한 박두진•조지훈과 함께 청록파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우익의 기수로 해방 후의 혼란한 문학계를 이끌어 간 시단의 큰 별이었다. 특히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이별의 노래>와 그의 슬픈 이별을 노래한 <떠나가는 배>의 주인공인 목월 시인은 젊은 문학소녀와의 열애로 더욱 유명했다.

1953년 봄, 목월이 대구의 한 교회에서 서울의 명문 E여대생인 H양을 만나서부터 그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인과 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은 운명이었는지 서울 환도 후에 재회를 하게 되었고 H양은 목월을 존경하는 시인의 관계를 넘어 이성으로서 사랑의 싹을 틔우게 된다. 목월은 젊은 여대생과의 관계에 부담을 느끼고 후배를 통해 헤어지도록 설득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H양은 “나는 사랑 이상의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이런 무상의 사랑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완강하게 목월과의 헤어짐을 거부했다. 

38살의 젊은 시인으로 서울대 교수로 재직한 목월은 처자식을 거느린 유부남이었다. 젊은 여대생과의 뜨거운 사랑에 빠져 교수라는 사회적 명망을 내던지고 그녀와 함께 제주도로 사랑의 도피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녀는 친구의 간곡한 관계 청산 요구도 일언 지하에 거절했다. 목사인 아버지의 간곡한 설득도 그녀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둘이는 제주도로 잠적하여 동거생활에 들어갔지만 그들의 행방을 수소문한 아내 유익순 여사가 겨울 한복 한 벌씩과 생활비를 두 사람 앞에 내놓고 서울로 돌아갔다. 사랑과 분노•미움•연민 등등 모든 감정이 담긴 한복 한 벌과 생활비를 내놓은 그 심정은 정말 모든 이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누구는 아내의 사랑이 돋보이는 ‘맑은 사랑’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일설에는 여자의 아버지인 목사가 딸을 끌고 가면서 목월을 나무에 묶어 놓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분위기로 봐서 믿기 어려운 낭설인 듯 싶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두 사람의 도피와 동거는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제주도에 가을이 짙어가던 어느 날, 목월은 그녀와 4개월에 걸친 동거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갔다. 이때 목월이 그녀와 헤어지면서 쓴 시가 이별의 대명사로 알려진 그 유명한 <이별의 노래>이다.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잊지 못하고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목월을 잊지 못했고 목월도 죽는 순간까지 그녀를 잊지 못했다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 사랑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사랑을 설명하고 있다. 사랑이란 “어떤 상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관계나 사람을 뜻한다.” 또 한편으로는“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마음을 베푸는 일”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H양의 사랑이 전자에 속하고 목월의 사랑은 후자에 속한다는 생각이 든다.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첫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첫사랑같이 중요한 생물학적 현상을 어찌 화학이나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랑은, 특히 첫사랑은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지나고 보면 첫사랑은 한 줄의 시 같은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갖고 싶어 하는 귀한 추억인 것이다.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현대시조발발행인 능곡이성보

시조 작품 <비몽사몽>은 ‘내시경 회복실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사설시조인데 내시경 회복실에서 꿈속 같은 상황을 읊은 윤미정 시인의 작품이다. 오랜만에 접하는 사설시조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의 기본 음율과 산문율(散文律)이 혼용된 산문체의 시조 형태를 말한다. 시조문학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대체로 평시조는 士大夫 문학이었고, 사설시조는 庶民 문학이었다. 달리 말하면 평시조는 양반 계층의 문학이었고, 사설시조는 서민 대중의 문학이었다.
 사설시조는 초장·종장은 평시조의 정형률을 따르되 중장만을 길게 하는 것이 사설시조의 타당한 방법이라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보면
  한잔 먹새그려 또 한잔 먹새그려
  곳 것거 산노코 무진무진 먹새그려 이몸 주근후면
  지게우해 거적더퍼 주리혀 매여가나 유소 보장의
  만인이 우러네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난비 굴근눈 쇼쇼리 바람 불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우해 잔나비 바람 불제 뉘우친들 엇디리.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다. 사설시조의 효시작으로 알려진 이 장진주사는 이백(李白)의 <장진주(將進酒)>를 닮아 그 내용이 너무 처절하다. 장진주는 술을 권한다는 뜻이며, 주제는 모든 것이 한순간이니 지금 이 순간 술 마시고 마음껏 즐기자는 것이다. 사설시조의 매력은 산문시를 뛰어넘는 문장의 긴장감 유지와 압축과 생략의 미학을 추구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고전 사설시조의 해학성, 현실비판, 요설, 풍자, 에로티시즘, 유머 등의 본령을 오늘의 감각에 걸맞게 개발할 여지가 많다고 본다. 서사적 요소와 해학성 및 풍자 정신을 가미한 사설시조를 활발하게 창작하게 되면 시조문학의 외연을 넓히게 되고 새로운 발전 가능성도 보이지 싶다. 위내시경 검사를 해 본 사람은 안다. 온 정신에 그냥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하얀색 프로포폴로 수면내시경 검사를 하게 된다.

/ 비위가 약해선지 온정신에 할 수 없어 / 하얀색 프로포폴에 의지해 꿈나라에 들었겄다. 검사가 끝났는가 하고 눈을 뜨니 아직이었다. 무의식중에 들려오는 말소리들, 하나같이 귀밖에 머물고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은 돈 버는 소리였다. 그것도 깨어나자마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아련한 꿈이었다. 시인은 이제 사설시조에까지 창작의 폭을 넓히고 있다. 재치가 넘치기에 앞으로 좋은 작품이 기대된다.바람에 날리는 낙엽 따라 가을이 줄달음치고 있다.-능곡시조교실 제공

박춘광 기자  gjtl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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