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산책 (334)
       시계마차 

     
    곡정 최민호  

돼지 김치국에다 버섯국수를 넣고 큰사발에 담아 설날을 보낸 기념으로 상다리를 잡았다. 50년 전의 추억을 곁에 앉히고 마주한 자리 친구도 아우도 같이하니 더욱 정겹다. 쫄깃한 자연산의 맛에 웃음을 포개니 시계마차는 그날로 달려간다

배고파 먹을 것이 귀한 시절 책보따리를 책임진 친구는 멀찌감치 망을 보고 낮은 포복으로 살금살금 남새밭을 헤볐다. 고구마 감자 마늘 양파를 밭에서 훔쳐 씻지도 않은 채 잔디밭에 앉아 쓱쓱 문지르고 너도 한입 나도 한입 베어 물고 책 보따리를 둘러메고 삼거리 십 리 고갯길을 넘던 그 날들

5학년쯤 되었을까
특활시간에 밭주인 아들이 "저요, 할 말이 있는데요. 삼거래 아ㅡ들이 우리밭에 고메. 다마내기캉 제지다 파묵어서 행팬이 없는데예…” 이 말에 바싹 졸였지만 우리들은 선생님의 꾸중을 밥먹듯 하였다

동네잔치가 있는 날이면 돼지 오줌통을 비우고 대나무 깔대기로 바람을 넣어 공차기를 즐겼다. 맨발에 땀이 밸 때쯤 짚으로 묶어둔 고무신이 오줌통 공보다 훨씬 높이 하늘을 날았다. 
구멍 난 고무신이지만 깨끗하게 씻어 말려 놓고 연필에 침을 묻혀 숙제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초이틀의 밤을 지나 초사흘을 넘긴다

홰치는 소리에 시계마차가 멈추었다

감상)

눌산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설을 쇠고 나서 친구도 아우도 자리를 같이 모였다. 얼큰하게 술상을 보아 나누면서 50년 전의 추억으로 시계마차를 되돌리고 있다. 때로는 낯 뜨거웠던 일들도, 더러는 부끄러운 일들도 추억이란 이름으로 모두가 용서되고 화헤되는 안주거리가 된다. 글을 읽고 있는 독자도 그 자리에 함께 끼여 즐거운 옛날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나이든 사람들의 추억담은 언제나 배고픈 시절의 회상이 먼저다. 그러나 그 가난이 지나고 보면 나를 이렇게 키워놓은 원동력이 되었음을 알고 있다. 가난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모르는 요즘의 사람들에게는 ‘라떼’의 늙은이 취급하겠지만, 그런 배고팠던 시절이 그렇게 먼 옛날이야기가 아닌데도 세상은 벌써 다 잊고 산다. 최민호 시인의 <시계마차>는 산문형식을 차용한 한 시대의 기록문으로 의를 갖는다.  (눌산 윤일광 문예창작교실 제공)

서정윤 기자  gjtline09@naver.com

<저작권자 © 거제타임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